"낯선 선생님 한 분이 체육시간에 호루라기를 불며 구령을 붙이는데, 그 모습이 하도 엄해 우리는 벌벌 떨었지요. 정말 호랑이 선생님이 오셨구나 하면서요."

고(故)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초등학교 은사에 대한 소회를 이렇게 남겼다. 그 '호랑이 선생님'은 14일 별세한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이다. 그는 1945년부터 진주 지수초등학교에서 2년, 부산사범부속초등학교에서 3년간 교직에 몸담았는데 무엇보다 학교 규율을 세우는 것을 우선시해 이렇게 불렸다.

1996년 6월 LG사이언스홀을 방문한 구자경(가운데) LG그룹 명예회장이 어린이들과 사진촬영하고 있다.

그로부터 50년 뒤, 대기업 회장에서 자연인으로 돌아온 구 명예회장은 지수초 학생들의 서울 방문을 직접 챙겼다. 어린 학생들이 장거리 여행으로 멀미할 것을 걱정하며 직접 멀미약까지 살뜰하게 준비했다. 주변 사람들은 구 명예회장을 누구보다 소탈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재계 어른으로 기억했다.

그는 또 "내가 가업을 잇지 않았다면 교직에서 정년을 맞았을 것"이라며 인재 양성에 열의를 보였다. 대기업 회장으로 재임하면서 연암대·연암공과대 설립, 전자도서관·청소년을 위한 과학관 설립 등 인재 교육에 전폭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1995년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구 명예회장은 "한번 믿으면 모두 맡겨라"라는 부친 구인회 창업주의 신념처럼 경영에 간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대신 자신이 세운 충남 천안의 연암대학 근처에 건설현장사무소와 같은 투박한 모양의 연구실을 짓고 버섯을 재배하고 메주를 띄우며 평범한 촌로(村老)처럼 살았다.

구 명예회장은 교직생활 때부터 시작한 나무 가꾸기로 시작해, 난(蘭)·버섯 연구에 끈질기게 파고들어 전문가 수준이 됐다.

그는 1995년 국내에 버섯공장은 많이 있어도 버섯 종균을 배양하는 업체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버섯 연구를 시작했다. 버섯에 대한 지식 없이 시작했으나, 10여 년간 국내외 주요 서적과 각종 자료를 샅샅이 뒤진 끝에 연암대 교수들과 함께 새로운 버섯을 개발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