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의 생명공학 계열사 '칼리코', 건강한 벌거숭이두더지쥐 연구
래리 엘리슨 오라클 회장, 1997년부터 노화연구에 3920억 지원

‘4차 산업혁명’의 심장인 미국 실리콘밸리에선 ‘불사(不死)’에 대한 연구가 한창이다. 구글의 생명공학 계열사 칼리코(Calico)를 비롯해 애플, 페이스북, IBM 등 IT(정보기술) 공룡들이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을 활용해 IT·바이오 기술을 융합하는 혁신에 도전하고 있다.

IBM은 AI 의사 ‘왓슨’을 기반으로 불치병 정복에 도전하고 있다. 애플은 지난해 세계 최초로 심전도(ECG) 측정이 가능한 스마트워치를 내놓으면서 헬스케어 분야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 2000년 인간게놈을 완전 해독한 미국의 생명과학자 크레이그 벤터가 설립한 휴먼 롱제티비(Human Longevity)를 비롯한 스타트업들도 유전자와 질병의 관계를 밝히기 위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실리콘밸리가 바이오 기술에 접근하는 방식은 기존 의료기업, 정부와 사뭇 다르다. 기존에는 암, 심혈관계 질병, 당뇨병 등의 만성질환과 불치병 치료를 위해 연구개발(R&D)을 집중했다. 그러나 실리콘밸리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노화 자체를 막는 근본적 해결법에 더 집중하고 있다.

미국 마운틴뷰에 위치한 구글 본사.

불과 100년 전만 해도 평균 기대수명이 40세 이상인 나라는 지구상에 단 1곳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근대화와 함께 의료기술의 발전, 위생·환경 개선, 신약 개발 등을 통해 수명이 늘었다. 2016년 말을 기준으로 전 세계 평균 수명은 72세에 달하고 있다.

정작 선진국에서는 노년 기대 수명이 크게 늘지 않았다.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경우 1850년대 70세 이상 노인의 기대수명이 79세였지만, 2000년에는 겨우 7년 늘어난 86세에 그치고 있다. 노년에 이르기 전 사망 확률을 크게 줄였지만, 노화 자체로 인한 사망에는 속수무책인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화에 도전하는 실리콘밸리 회사로는 구글의 생명공학 계열사 칼리코가 대표적이다. 2013년 구글의 공동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가 설립한 칼리코는 세계 최고의 생명공학자, AI 전문가를 영입해 비밀리에 연구를 진행중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건 칼리코가 집중적으로 연구한 주제 중 하나가 벌거숭이두더지쥐라는 것이다. 벌거숭이두더지쥐는 케냐 등 아프리카 동부에 사는데 몸길이가 8∼10㎝이며 털이 거의 없다. 땅 속에서 남편 쥐 1~3마리를 거느린 여왕쥐를 중심으로 100여마리가 군집해 생활한다.

벌거숭이두더지쥐의 모습.

벌거숭이두더지쥐가 노화 방지 연구에 쓰이는 이유는 건강하게 오래 살기 때문이다. 같은 크기의 다른 쥐보다 무려 10배 이상인 32년 정도를 산다. 벌거숭이두더지쥐는 암에 걸리지도 않는다. 세포 변형을 막는 단백질이 만들어져 세포 손상을 막고 암세포 생성을 거의 차단한다.

세포 손상은 인간이 노화에 이르러 사망하게 되는 가장 큰 요인이다. 인간의 세포 내 염색체는 말단소체라는 보호캡을 갖고 있는데, 세포 분열이 일어날 때마다 캡이 짧아진다. 인간은 보통 50여회의 세포 분열 후 분열을 멈춘다. 말단소체가 더이상 염색체를 보호할 수 없게 되면 세포는 죽는다. 노화를 막기 위해서는 말단소체가 너무 짧아지지 않도록 세포를 조작해야 한다.

실리콘밸리의 ‘큰손’들은 안티에이징 관련 연구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기업 오라클의 래리 엘리슨 회장은 자신의 이름을 딴 ‘엘리슨의학재단’을 설립, 1997년부터 현재까지 노화연구에 3억3500만달러(3920억원)를 지원했다. 페이팔 공동 창업자인 피터 틸도 노화 연구자인 오브리 드 그레이 박사가 이끄는 ‘센스 연구재단’의 인간수명 연장 연구에 600만달러(약 70억원)를 지원했다.

크리스틴 포트니 바이오에이지랩스 최고경영자(CEO)는 "생물학자들은 인류가 암을 완전히 정복한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는 건 4년 정도에 불과할 것이라고 설명한다"며 "결국엔 노화로 다른 질환에 시달릴 것이기 때문에 유전자의 비밀을 밝혀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