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조선업 경기가 살아난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지만, 해양플랜트 부문은 고전하고 있다. 저유가로 드릴십(원유시추선) 수주가 줄었고 계약 취소, 손해배상 소송이 수년째 발목을 잡고 있는 탓이다.

13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스웨덴 시추업체 스테나는 런던국제중재법원(LCIA)에서 삼성중공업(010140)에 반잠수식 시추 설비 선수금을 돌려달라는 내용의 소송을 진행 중이다.

스테나는 삼성중공업에 2013년 6월 ‘미드맥스’를 발주하며 준 선수금 30%(2억1500만달러)와 이자 금액을 돌려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청구한 금액은 삼성중공업이 2016년 2분기 미드맥스 예상 손실로 반영했던 금액(1954억원)보다 큰 규모다.

삼성중공업과 스테나는 3년째 미드맥스 인도 지연을 두고 갈등을 빚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2017년 "선사가 계속해서 설계를 변경하고 과도한 요구를 해 일정이 지연됐다"며 비용을 청구했으나, 스테나는 계약해지로 맞섰다. 삼성중공업은 스테나의 선수금을 몰취하고 노르웨이 시추회사 오드펠에 시추 시설을 매각해 건조대금을 회수했다.

삼성중공업의 극지(極地)용 드릴십

삼성중공업의 해양플랜트 악몽은 미드맥스 뿐만이 아니다. 삼성중공업이 현재 계약을 취소당하거나, 재판매에 나선 시추선은 총 5척이다. 스테나 외에도 시추선을 발주한 퍼시픽드릴링, 엔스코와도 소송에 휩싸여있다. 삼성중공업은 미국 시추업체 퍼시픽 드릴링과 2015년부터 3억 달러(3560억원) 규모의 계약금 반환 분쟁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엔스코와의 법적 다툼에서 패소해 1억8000만 달러(2136억원)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대우조선해양도 비슷한 상황이다. 대우조선해양이 아직 주인에게 인도하지 못한 시추선은 4척으로, 받아야 할 잔금 규모는 6억9000 달러(7125억원) 정도다. 지난 10월 노르웨이 시추회사 노던드릴링 자회사인 웨스트코발트에 드릴십 매매 계약 취소를 당한 1척까지 포함하면 5척으로 늘어난다. 노던드릴링 측은 "미리 지급한 선수금과 손해배상금을 대우조선해양에 청구할 것"이라고 밝히는 등 소송전을 예고한 상태다.

당장 국내 조선사의 내년 해양플랜트 수주 전망도 밝지는 않다. 해양시추업체들이 2012~2013년 대규모 발주를 단행했지만, 이후 국제유가가 급락하면서 보유 현금 감소, 부채 증가로 투자가 위축됐다. 올해도 유가가 50~60달러에 머물면서 조선 3사 중 해양플랜트 수주에 성공한 기업은 삼성중공업 한 곳뿐이다.

이현수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조선 부문에 대한 기대감은 내년에 더욱 커질 수 있지만, 해양 부문은 그렇지 않다"며 "올해 2분기 이후 유가가 약세를 보이고 있고, 시추 설비에 대한 잇따른 계약취소로 재무부담도 커져 리스크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도 "올해와 내년은 해양 시추업계의 보릿고개로 2021년에 회복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며 "시추선 매각이 지연되면 조선사들은 유지보수비용 부담, 감가상각 리스크가 있어 빠른 유동화가 필요하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