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산업 공급, 수요에 비탄력적인 구조적 특징 있어"
"수급 과점, 가격변동폭 키워…구매 지연, 단가 하락 심화"

한국은행은 내년 중반이면 우리나라의 반도체 수출이 회복국면에 들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주요 반도체의 단가 하락세가 멈춰 내년 상반기에는 상승세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했다. 수년간 감소해왔던 세계 PC 출하량과 각종 메모리 선행지표들이 개선되고 있다는 점도 반도체 회복의 근거로 제시됐다. 한은은 반도체 공급이 수요에 비탄력적이라는 점, 수요·공급이 모두 과점형태라는 점을 구조적 특징으로 제시하면서 그간 반도체 경기둔화를 투자·공급 증가에 따른 조정과정으로 평가했다.

한은은 12일 국회에 제출한 '12월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서 "글로벌 메모리 경기와 우리 반도체 수출은 내년 중반경 회복국면에 들어설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최근 메모리 단가와 전방산업 수요 변화, 반도체 제조용장비 주문과 같은 선행지표 움직임 등을 감안한 결과다.

부산 신선대 수출항 전경

반도체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이끄는 건 낸드플래시, D램 등 주요 부품 단가의 움직임이다. 낸드플래시(128Gb) 가격은 지난 5~6월 3.9달러까지 떨어졌다가 7월부터 상승하기 시작해 10월 4.3달러까지 올랐다. D램(8Gb)의 경우 8월 이후 하락폭이 줄어 10월 2.8달러 수준에서 가격이 형성됐다. 한은은 그간 IT기업들이 메모리 구매를 지연하면서 단가가 하락했지만 내년 상반기 중에는 단가가 상승 전환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상형 한은 통화정책국장는 "메모리 단가 하락세가 둔화되면서 그간 반도체 구매에 소극적이었던 서버부문 IT업체들이 데이터센터 서버용 반도체 구매를 재개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년간 감소해왔던 PC출하량이 올해 2분기에 증가로 전환했다는 점도 반도체 회복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전세계 PC출하량은 2017년부터 2년 연속 0.6%(전년대비) 감소했다. 올해 1분기에는 3.0%나 감소했지만 2분기에는 4.2% 증가세로 돌아선 후 3분기에도 3.0% 출하량이 늘었다. 이외에 메모리 선행지표로 언급되는 반도체 제조용 장비업체 매출액도 최근 개선흐름을 나타내고 있다.

한은 제공

한은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반도체 경기가 둔화했던 원인을 과거 투자·공급 증가에서 찾았다. 반도체 산업은 생산라인 조정에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 공급이 수요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가 어려운데, 이로 인해 수요 확대기에 늘어난 공급이 상당기간 유지된 것으로 분석했다. 즉, 수요가 줄었는데도 공급이 계속되면서 단가가 낮아졌다는 말이다. 이에 반도체 경기가 '수요 증가에 대응한 투자 확대 → 수요 감소 → 경직적 공급 조정에 따른 단가 하락 → 매출 감소'의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고 봤다.

이 국장은 "과거 사례를 보면 전세계적으로 반도체 투자가 크게 증가한 경우 1~2년 내 전세계 D램 매출액이 감소하는 경향이 나타났다"며 "올해 들어서도 2017년 이후 투자 급증의 영향으로 상반기 중 큰 폭의 초과공급이 발생하고 메모리 단가 하락세가 심화됐다"고 했다.

한은은 반도체 시장에서의 수요, 공급이 모두 과점을 형성하고 있어 가격 변동폭이 커진다는 분석도 제시했다. 반도체 수출물가는 자동차, 기계류 등 여타 품목의 수출물가에 비해 큰 폭으로 등락하는 경향이 있는데 수요과점은 가격 하락기에, 공급과점은 가격 상승기에 각각 변동폭을 확대시키는 것으로 분석했다. 즉, 지난해 하반기 이후 메모리 단가 하락에 대한 기대감으로 대형 IT업체들이 전략적으로 구매를 지연해 단가 하락세가 심화됐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