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푸드빌이 운영하는 베이커리 '뚜레쥬르'는 9개월여 전 전담팀을 구성했다. 이들의 임무는 지난달 21일 개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2'의 라이선스를 따내는 것. 2014년 겨울왕국 1편이 개봉했을 때 경쟁사 파리바게뜨가 가져갔던 라이선스를 갖고 오기 위해 디자인, 상품 기획, 브랜드 담당 등이 총동원됐다. 결국 라이선스를 따낸 뚜레쥬르는 요즘 신바람이 났다. '겨울왕국 2 케이크'가 판매 시작과 함께 일부 지역에서 품귀 현상을 보이며 출시 1주일 만에 판매량 2만개를 돌파한 것이다. CJ푸드빌은 "뚜레쥬르의 메가 히트 케이크로 꼽히는 '초코골드레이어'가 2주일이 더 걸려 2만개를 팔았는데, 이를 뛰어 넘는 신기록"이라고 말했다.

엘사가 살고 있을까? 뉴욕의 명품 백화점, 겨울왕국 성으로 변신 - 겨울왕국 2의 인기로 전 세계 유통가도 들썩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을 대표하는 삭스 피프스 애비뉴 백화점의 모습.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더욱 북적이는 이곳이 올해는 디즈니와 손잡고 겨울왕국 2에 나오는 성으로 변신했다. 밖에서 훤히 보이는 1층 윈도에는 겨울왕국 2 캐릭터가 자리 잡았다.

내수 부진으로 힘겨운 겨울을 날 것으로 우려했던 유통가에서 겨울왕국 2가 '핫팩' 노릇을 하고 있다. 디즈니에서 겨울왕국 2 라이선스를 얻어 관련 제품을 출시한 업체들은 물건을 대기 어려울 정도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올겨울 유통가는 겨울왕국 2 라이선스 유무로 희비가 엇갈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겨울왕국 2 효과는 국내뿐 아니라 미국, 중국 등 전 세계에서 나타나고 있다.

겨울왕국 2 열풍, 유통가에 훈풍으로

디즈니코리아에 따르면 국내 70여 브랜드가 겨울왕국 2와 공식 파트너 관계를 맺었다. 파트너사는 한국야쿠르트, 스파오, CJ푸드빌, BR코리아, 삼천리, H&M, 다이소 등으로 업종이 다양했다. 겨울왕국 2 공식 파트너사가 출시한 신제품은 케이크, 옷, 장갑, 마스크, 어린이용 화장품, 발 매트 등 1000가지가 넘는다. 화장품 기업 슈슈코스메틱은 디즈니와 협업해 '겨울왕국 2 네일 3종 세트'와 립밤, 핸드크림 등을 출시할 계획이다.

겨울왕국 2의 인기로 유통가에 관련 상품이 쏟아지고 있다. 뚜레쥬르의 '겨울왕국 2 블루베리 화이트' 케이크와 화장품 기업 슈슈코스메틱이 내놓은 겨울왕국 2 네일 제품.

겨울왕국 2 효과를 체감하고 있는 건 뚜레쥬르뿐이 아니다. 이랜드리테일의 아동복 브랜드 로엠걸즈와 코코리따는 겨울왕국 2 주인공이 입은 것과 같은 디자인의 드레스를 출시했는데 5일 만에 준비한 수량 1만벌이 다 팔렸다. 배스킨라빈스가 출시한 아이스크림 케이크 '엘사와 안나의 겨울왕국'은 지난달 21일 출시 이후 3주 만에 5만개가 판매됐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이 출시한 '겨울왕국 2 워터돔(스노우볼 DIY 세트)'과 '겨울왕국 2 스티커북'은 이달 1~10일 기준 완구와 서적 부문에서 각각 매출 1위에 올랐다. 세븐일레븐 관계자는 "겨울왕국 2의 인기에 힘입어 전체 완구류 매출이 전년 대비 31% 상승했다"고 말했다.

한국뿐 아니다. 겨울왕국 2가 몰고 온 유통가 훈풍은 세계적 현상이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은 "디즈니가 겨울왕국 2 개봉에 맞춰 전편에 비해 더 많은 파트너사에 라이선스를 줬다"며 "라이선스를 받은 업체들이 새로운 매출 기록을 쓰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디즈니에 따르면 중국에서 겨울왕국 2 개봉 열하루 전인 지난달 2일 하루 중국 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의 티몰에서만 24시간 동안 디즈니 제품이 509만점 팔렸다. 차이나 데일리는 "초당 59개가 팔린 것"이라며 "대부분이 드레스, 스카프, 아동복 등 겨울왕국 2 제품이었다"고 보도했다. 미국 뉴욕을 대표하는 명품 백화점 삭스 피프스 애비뉴는 디즈니와 손잡고 건물 외관을 겨울왕국 2에 나오는 성으로 꾸몄고, 밖에서 훤히 드러나는 윈도에는 겨울왕국 2 캐릭터를 배치하기도 했다.

마니아 늘고 굿즈 문화도 확대

겨울왕국 2 라이선스를 얻은 업체들은 2014년 개봉했던 전편보다 유통가에 나타나는 파급 효과가 훨씬 크다고 입을 모은다. 왜 그럴까.

실제 겨울왕국 2의 흥행 속도는 전편을 뛰어넘었다. 겨울왕국 2는 개봉 17일째인 지난 7일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관객 1000만명 돌파 시간이 전편(46일)보다 29일 짧았다. 업계 관계자는 "5년 전 겨울왕국을 접했던 세대에 더해 이번에 겨울왕국 2로 새로운 어린이 관객까지 유입돼 마니아층이 한층 두꺼워졌다"고 말했다.

전편이 나오고 이번 2편이 개봉할 때까지 5년 동안 소비 문화가 바뀌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대학원장은 "5년 사이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나 브랜드와 관련된 제품에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이른바 '굿즈 문화'가 빠르게 확산됐다"며 "겨울왕국은 스토리의 힘이 어떻게 산업에 효과를 불러오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겨울왕국이라는 애니메이션에 열광하는 마니아가 늘었고, 이들의 충성도가 관련 상품 소비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듯 기업들은 앞다퉈 캐릭터를 직접 개발하고, 신규 캐릭터 브랜드와 손잡고 있다.

[보도자료 띄어쓰기까지 검사하는 디즈니]

"정말 힘들었어요."

디즈니 라이선스를 받은 한 유통 업체 인사에게 경험담을 묻자 대뜸 이렇게 말했다. 그는 "디즈니랑 손잡아야 매출이 오른다는 건 이제 공식"이라면서도 "같이 일하기는 참 힘들다. 꼼꼼함이 극에 달한다"고 했다.

디즈니코리아는 디즈니, 픽사, 마블, 스타워즈 등 네 브랜드를 바탕으로 이랜드그룹, 신세계 인터내셔날 등 300곳이 넘는 파트너사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있다. 디즈니의 검수 작업은 라이선스를 받아본 국내 기업인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다. 디즈니와 일해 본 한 식품 업계 관계자는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과 홍보 모델도 디즈니가 오케이해야 한다"며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는 생각도 들었지만, 결국 좋은 제품을 내놓겠다는 의도이고 디즈니를 잡아야 성공하는 시대이니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디즈니와 협업한 경험이 있는 또 다른 인사는 "제품 홍보 포스터와 보도 자료도 디즈니에서 확인받고 난 뒤 내보낼 수 있다"며 "보도 자료 띄어쓰기도 검사하더라"고 말했다.

디즈니는 캐릭터와 브랜드 일대일 계약을 맺는 것으로 알려졌다. 계약은 통상 매년 갱신한다. 같은 업종에선 복수 계약을 지양하기 때문에 라이선스를 얻기 위한 업체들의 경쟁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업계에선 디즈니가 라이선스 공급 등으로 매년 조 단위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본다. 디즈니는 지난해 총매출 594억달러(약 71조원)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