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4일 르노삼성 부산 공장에서 (앞줄 왼쪽부터) 도미닉 시뇨라 르노삼성 사장, 오거돈 부산시장, 박종규 르노삼성 노조위원장이 상생 선언문을 함께 들고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모습.

르노삼성 노조가 다시 갈등 골을 키우고 있다. 르노삼성 노조는 10일 전체 조합원 대상 파업 찬반 투표를 한 결과 "찬성률 66.2%로 가결돼 파업권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노조는 다음 주 중 대의원 회의를 열고 파업 시기와 규모 등을 정할 계획이다.

르노삼성 노조는 지난해 6월부터 올 6월까지 1년간 60여 차례에 걸쳐 부분·전면 파업을 벌였고, 지난 6월에야 '2018년도 임단협'을 타결했다. 당시 르노삼성 노사는 "무분규 사업장으로 거듭나겠다"면서 '노사 상생 선언문'을 발표했는데, 고작 5개월 반 만에 노조가 이 합의를 뒤집고 파업 절차에 들어간 것이다. 최근 노조 집행부가 바뀐 한국GM도 노사 갈등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전면 파업까지 이어졌던 올해 임금 협상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인력 편성 계획에 노조가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자동차 노조의 파업은 임·단협이 한창인 여름에 주로 벌어져 '하투(夏鬪)'라고 했다. 그러나 올해는 겨울까지 싸움이 끝나지 않은 상황. 업계에선 '노조 동투(冬鬪)를 주의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경영 환경이 나날이 악화하는 두 자동차 회사엔 더욱 아픈 겨울이 오고 있는 것이다.

◇'올해가 마지막 기회'라는 노조

르노삼성 노조 집행부가 상생 선언문을 5개월 반 만에 뒤집은 것은 역설적으로 '최악 위기를 앞둔 상황에서 올해가 급여 인상을 할 마지막 기회'라는 논리다. 올해 르노삼성 부산 공장의 생산량은 1~11월 15만여 대로 전년 동기 대비 25% 가까이 줄었다. 내년엔 '생산 절벽'을 맞는다. 올해까지 위탁 생산했던 닛산의 SUV '로그' 물량이 완전히 빠지기 때문이다. 대신 르노의 신형 SUV인 'XM3' 모델을 생산해 물량 감소를 대체하고자 했으나, 많아야 2만~3만대 수준일 내수 물량만 확보하고 수출 물량은 받아내지 못했다. 업계에선 내년 부산 공장 생산량이 '최고 12만~13만대 수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고정비가 높은 공장의 특성상 생산 물량이 이만큼 줄어들면 경영 실적도 악화한다. 지난해 3500억원 수준의 영업이익을 냈던 르노삼성은 올해는 영업이익 규모가 3000억원을 밑돌 전망이고, 내년엔 더 악화해 적자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 노조는 '적자 전환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재정적으로 여지가 남은 올해가 급여를 인상할 마지막 기회'라는 주장이다. 노조가 요구하는 기본급 인상액은 1인당 12만원 수준. 노조 측은 최근 수년간 흑자가 있었던 만큼 기본급 인상 여력은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르노삼성 측은 이번에 급여를 올리면 향후 물량 확보가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고 있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본사에서 아직까지도 XM3 수출 물량을 확정해주지 않는 건 전 세계 공장별 생산성을 철저히 따져 가장 효율이 높은 공장에 맡기기 위한 것"이라며 "기본급을 올리면 고정비가 상승해 효율성이 나빠지고, 결국엔 물량 받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만약 실제 파업이 벌어진다면 노노(勞勞) 갈등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르노삼성 노조 집행부는 지난 6월 전면 파업을 선언했으나, 조합원 상당수가 지침을 무시하고 출근해 근무하는 이례적인 일이 벌어진 바 있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파업 찬성률(66.2%)이 역대 최저 수준"이라며 "집행부와 성향이 다른 조합원도 적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영대 교수는 "노조가 파업을 강행한다면 근시안적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지금은 '고용 안정'을 위해서라도 노사 간 상생 협력이 더 시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파업=물량 감축' 상황 된 한국GM

지난 9월 회사 설립 이후 처음으로 전면 파업을 강행했던 한국GM 노조의 파업권은 여전히 유효하다. 2019년도 임협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 집행부로 교체된 한국GM 노조는 내년 1월 노사 간 상견례를 갖고 새 협상을 진행하겠다는 방침이나, 벌써 노사 관계에서 갈등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GM은 창원 공장에서 스파크·다마스·라보 등 경차를 생산하고 있는데, 이 차종들의 판매량이 감소해 공장 인력 운영을 2교대에서 1교대로 줄일 계획이다. 노조는 구조조정 등을 우려해 이 같은 인력 운영 계획에 반발하고 있다. 한국GM의 경영 상황도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한국GM 세 공장(부평 1·2, 창원)의 생산량은 올 1~11월 37만6000대로 전년 동기 대비 약 10% 줄었다. 본사인 미국 GM의 글로벌 판매량이 감소하고 있어, 지금까지 한국GM을 떠받쳐 온 '수출 물량'도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그런 가운데 만약 노사 갈등이 벌어진다면 치명타가 될 전망이다. 앞서 미국 GM 본사의 해외 사업 부문 줄리언 블리셋 사장은 노조에 "한국에서 생산해주지 못한 물량은 다른 국가 공장으로 이전이 가능하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세계 자동차 수요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르노·GM 등 한국 회사의 모기업들도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자동차 산업의 밸류체인이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노조도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