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우버 '그랩' 등 해외 모빌리티 기업 경쟁력 강화 박차
박재욱 VCNC 대표 "혁신은 이용자와 시장이 판단" 연일 호소

국내 승합차 호출 서비스 ‘타다'가 사업 좌초 위기에 놓인 가운데, 해외 모빌리티(이동 수단) 기업들이 미래 경쟁력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서비스 고도화, 사업분야 확장을 위해 자율주행·인공지능(AI) 인재 확보, 인수합병(M&A)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카풀, 콜버스, 타다 등 국내 기업이 줄줄이 사업을 접는 동안 해외 기업들은 몇 단계 앞서 뛰는 양상이다.

IT 업계에선 타다 사태가 모빌리티 산업뿐 아니라 국내 창업 생태계 전반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내 기업 경쟁력 약화는 물론, 새로운 스타트업의 창업 시도 자체를 막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 美 우버 자율주행·AI 투자 가속화… 동남아 그랩· 中 디디추싱도 사업 확장

글로벌 차량 공유 업체 우버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캐나다 토론토에서 12개월 동안 진행하는 연수 프로그램 ‘우버 AI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할 인재를 선발하고 있다고 12일 밝혔다. 우버에서 AI 연구원으로 능력을 발휘하고 싶어하는 인재를 선점하려는 의도다.

AI 기술은 센서를 활용한 주변 환경 인지, 운전자 및 보행자의 움직임과 의도 예측 등에 활용되기 때문에 자율주행차 서비스 구현을 위한 핵심 기술로 평가된다. 실시간으로 이용자와 자동차(드라이버)의 연결을 돕는 최적화, 빠른 의사결정 등 자동화된 차량 공유 서비스 시스템에도 관련 기술이 활용된다.

다라 코즈로샤히(왼쪽) 우버 CEO와 로건 그린 리프트 CEO. 올해 뉴욕 증시에 상장한 우버와 리프트는 미국의 대표적인 차량 공유 업체로 꼽힌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CB인사이츠에 따르면 우버는 지난 6월 컴퓨터 비전(사람의 눈처럼 사물을 인식하는 기술) 스타트업인 마이티AI를 인수했다. 자율주행차가 사물을 더 잘 인식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기 위해서다. 이 회사는 현재 우버 내 첨단 기술 연구 조직(Advanced Technologies Group)에 통합돼 관련 기술 고도화에 앞장서고 있다.

‘동남아의 우버’로 불리는 그랩은 최근 공격적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지난 6일 마스터카드와 제휴, 은행 계좌가 없어도 전 세계 5300만 마스터카드 가맹점에서 이용할 수 있는 ‘그랩페이 카드’를 선보였다. 실물 카드, 카드 번호 없이 사용 가능한 디지털 카드로 그랩 결제와 쉽게 연동되며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차량 공유 서비스를 기반으로 빅데이터를 구축하고 이를 활용한 음식 배달(그랩 푸드) 서비스를 내놓더니 핀테크 분야까지 진출했다. 중국의 모빌리티 공룡 디디추싱(滴滴出行)도 최근 소프트뱅크와 손잡고 일본 시장에 진출하는 등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 국내 업체 고사… 박재욱 VCNC 대표 "혁신은 시장이 판단"

국내 상황은 정반대다. 카카오가 올해 초 카풀 서비스를 중단했고, 2015년 처음 등장한 콜버스(버스를 활용한 제한적 카풀 서비스) 역시 규제의 벽에 막혀 지난해 서비스를 접었다. 카카오모빌리티가 최근 택시 업체를 잇달아 인수하며 ‘플랫폼 택시’ 사업을 펼치고 있으나 ‘면허 총량 제한’ 등 기존 택시 업계의 틀에 묶여 있는 건 마찬가지다.

렌터카 운전자 알선 허용을 추진했다가 입장을 바꾼 국토교통부 때문에 타다는 고사 위기에 처했다. 국토부는 2012년 관련 법안 입법을 추진했고, 2014년엔 시행령 개정으로 '11~15인승 승합차 렌트 시 운전자를 알선할 수 있다'는 내용을 넣어 승합차 호출 서비스의 법적 근거를 마련한 바 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일명 ‘타다 금지법(운전자 알선을 제한)’은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절차만 앞두고 있다. 개정안이 공표되면 1년 6개월 후 타다는 서비스를 중단해야 한다. AI·자율주행 경쟁력 확보, 사업분야 확장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차량 호출 서비스조차 막힌 셈이다.

타다 금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1년 6개월 뒤 타다 서비스는 불법이 된다.

위기에 몰린 타다 운영사 ‘브이씨엔씨(VCNC)’의 박재욱 대표는 11일 회사 블로그를 통해 "기업과 서비스의 혁신성은 시장이 판단한다. 규제 때문에 발목 잡히는 건 한 회사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 활력에 영향을 미치는 큰 문제"라고 호소했다.

타다 서비스가 150만명의 이용자를 확보하며 1년 넘게 서비스를 이어갈 수 있었던 건 이용자들이 택시가 아닌 타다를 선택했기 때문이란 항변이다.

타다의 좌초가 모빌리티 산업뿐 아니라 국내 창업 생태계 전반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창업가의 자기효능감(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와 신념)을 떨어뜨려 창업 자체를 포기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는 "벽을 만나는 환경에서는 창업자가 자기효능감을 갖기 어렵다"며 "아마존도 조그마한 온라인 서점으로 시작했다. 대단한 혁신만 떠받드는 사회라면 결국 아무런 혁신도 만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