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5대 은행의 임원은 110명이 넘지만, 이중 여성 임원은 채 10명이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근로자가 임원이 되려면 오래 일해야 하고, 그만큼 성과와 자질을 인정받아야 하는데 은행 특유의 보수적 문화가 이를 어렵게 한다는 지적이다. 다만 최근 각 은행이 여성 관리자 비율을 높이기 위해 목표치를 세우고 육성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데서 변화의 조짐도 보이고 있다.

12일 은행권에 따르면 신한·KB국민·KEB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국내 5대 은행의 상무 이상 임원은 총 118명으로 나타났다. 이중 여성 임원은 9명에 그쳤다. 지난해 말 7명에서 2명 늘어났지만, 여전히 한자릿수에 불과한 수준이다.

농협은행(1명)을 제외한 4개 은행 모두 여성 임원이 2명씩 있다. 비중으로 따져보면 전체 임원 수가 21명으로 가장 적은 국민은행이 약 10%로 가장 높았고, 하나은행이 약 6%로 가장 낮았다. 전체 임원 수가 31명으로 가장 많은 탓이다. 이들 은행은 연말 인사를 앞두고 있어 인사 후에는 여성 임원 비율이 변동될 수 있다.

국내 5대 은행의 임원은 110명이 넘지만, 이중 여성 임원은 채 10명이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지난 2017년 미국 4대 은행인 웰스파고의 첫 여성 수장으로 선임된 엘리자베스 듀크.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봐도 ‘유리천장’이 견고한 편이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2019 유리천장 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100점 만점 중 간신히 20점을 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국 중 꼴찌다. 한국은 7년째 같은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한국 금융업의 유리천장은 갈수록 두꺼워지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주요 산업별로 여성 임원 비율을 살펴본 결과, 금융보험업의 지난해 여성 임원 비율은 3.4%로 전년(3.7%) 대비 0.3%포인트(P) 후퇴했다. 같은 기간 정보통신업(2.2%p)과 도소매업(1%p), 제조업(0.5%p) 모두 소폭이나마 상승한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현은주 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모든 은행사 내 최고관리직의 여성 임원 등용은 전혀 없다"며 "이는 최고 관리직에 도달할 때까지 노동시장에서 머무는 여성 근로자의 수가 적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충분한 성과와 자질이 있음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능력이 저평가됐을 가능성 역시 있다"고 말했다.

재무 안정성을 위해서라도 은행권은 여성 임원을 늘릴 필요가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은행의 안정성은 리더의 성별에 따라 차이가 발생한다"며 "이사회 내 여성 이사들의 비중이 높은 은행은 (남성 이사들의 비중이 높은 은행에 비해) 완충자본 비율이 높았고, 부실채권 비율이 낮았으며,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이 컸다"고 말했다. 여성은 위험 관리에 뛰어난 자질을 타고난 데다, 더 나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생각의 다양성이 필요한데 여성 임원이 이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여성 임원이 많은 은행은 조직 관리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도 있다.

최근 금융지주들이 성별 균형 성장에 힘쓰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우리금융지주는 2022년까지 여성 부장급을 10~15% 이상, 부부장급은 20~45% 이상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국민은행도 같은 해까지 여성 부점장급을 20%까지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신한지주(055550)는 여성 고위자 관리 육성 프로그램인 (SHeroes) 대상 그룹사를 기존 4곳에서 8곳으로 늘리고, 2022년까지 과장급 이상의 여성 관리자 비중을 24%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