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 신한지주, 하나금융, 우리금융 등 한국 대표 은행주의 평균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43배. 금융 시장이 공포에 질렸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0.53배)보다도 낮다. PBR은 주가와 주당 순자산을 비교한 수치로 PBR이 낮을수록 저평가돼 있다는 뜻이다. 올해 코스피 지수가 3.6% 오르는 동안 국내 4대 금융지주의 주가는 반대로 평균 3.4% 떨어졌다. 작년 말과 올해 상반기에 연달아 사상 최대 실적을 발표했음에도, 독일 국채 연계 DLS(파생결합증권) 손실 사태, 금리 인하로 인한 어두운 수익 전망 등이 겹친 탓이다.

이에 최근 KB금융지주와 신한지주가 나란히 자사주 소각 카드를 꺼내 들었다. 자사주 소각은 전체 주식 수가 줄어들어 1주당 가치가 올라가는 주가 부양책으로 꼽힌다. 국내 금융지주가 자사주 소각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두 금융지주사의 적극적인 주주 환원 정책을 두고 시장에서는 "은행주에 호재"라며 다른 은행들도 자사주 소각에 나설지 주목하고 있다.

◇자사주 소각 계획에 목표주가 '쑥'

KB금융지주는 지난 6일 이사회를 열어 약 1000억원어치 자사주 230만3617주를 소각하기로 결정했다. 소각 규모는 총 발행 주식 수의 0.55%로 소각 예정일은 오는 12일이다. KB금융은 지난 2016년부터 4차례에 걸쳐 1조4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사들인 바 있다. 시장에서는 향후 KB금융이 추가 인수합병(M&A) 등에 나설 때 보유 자사주를 활용할 것으로 예상해 왔지만, 현대증권과 LIG손해보험 인수 이후 마땅한 매물을 찾지 못했다. 이로 인해 쌓여 있는 자사주가 주가 상승을 제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KB금융지주 관계자는 "저금리·저성장 환경에서 은행의 성장성과 수익성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가 큰 상황이라 적극적인 주주 환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자사주 소각 계획이 나오자 증권가에서는 현재 4만7000원대인 KB금융의 목표주가를 최고 6만3000원으로 30% 이상 올려잡았다.

신한지주도 내년 1월 말 오렌지라이프 잔여 지분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자사주 소각에 나설 계획이다. 신한지주는 지난달 말 오렌지라이프를 완전 자회사화하기로 결정하고, 필요 자금 9584억원 중 6000억원은 이미 보유한 자사주로 조달하는 한편 나머지 3584억원은 신주 발행으로 마련하겠다고 공시했다. 자사주 소각 규모는 새로 발행되는 신주 한도 내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신한지주 관계자는 "유상 증자만 할 경우 주가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신주 발행 범위 내에서 자사주를 소각해 주주 가치를 제고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사주 '매입'보다 '소각'이 주가 상승효과 커

국내 1·2위 금융지주사가 자사주 소각에 나선 것은 양호한 실적에도 주가 흐름이 부진하자 주주 가치 제고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자사주 소각은 삼성전자 등 다른 대기업에서 주주 환원 정책으로 자주 활용해 왔다. 미국, 호주, 대만 등 글로벌 금융회사들도 자사주를 매입하는 동시에 소각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국내 금융지주들은 자사주를 매입하더라도 소각까지 한 적은 없었다. 자사주를 사들이기만 해도 시중에 유통되는 주식 수가 줄어들어 단기적으로 주가 부양 효과를 거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나중에 기업이 급전이 필요할 때 갑자기 자사주를 시장에 풀 수 있다는 우려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사들인 자사주를 아예 없애버리면, 기업 가치는 그대로인데 발행 주식 수 자체가 감소하기 때문에 자사주 매입보다 주가 상승효과가 더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업계에서는 KB금융과 신한지주의 자사주 소각을 계기로 글로벌 시장에서 국내 금융사들의 저평가 요인이 해소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김은갑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소각 규모가 작아 보일 수 있지만 국내 은행주가 자기 주식을 소각하는 것은 처음이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며 "기존 배당 외 주주 환원 수단이 추가된 셈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나금융과 우리금융 등 나머지 금융지주들의 주주 환원 정책에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병건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지난 6월부터 3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한 하나금융도 KB금융과 신한지주의 자사주 소각 행렬에 동참할 것인지 주목된다"고 밝혔다. 우리금융은 아직 자사주를 보유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