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시의 직장인 리쯔청(黎子澄·29)씨는 올 들어 스마트폰 간편결제 서비스를 거의 쓰지 않았다. 그렇다고 현금이나 신용카드를 고집하는 것도 아니다. 리씨는 대신 마트와 영화관에 비치된 안면 인식 결제 시스템을 애용한다. 카메라가 탑재된 간편결제 단말기에서 '얼굴로 지불하기'를 선택하면, 1초 안에 얼굴 정보를 확인하고 은행 계좌에서 요금이 빠져나간다. 중국의 IT(정보기술) 공룡 기업 알리바바와 텐센트가 주도하는 '안면 인식 결제서비스'가 유통 업체들에 본격 도입되면서다. 결제뿐만이 아니다. 리씨는 "공항에서는 얼굴 스캔으로 탑승권을 발권할 수 있고, 기차도 별도의 승차권 없이 안면 인식으로 탑승할 수 있다"며 "얼굴이 내 신분증이자 신용카드인 셈"이라고 말했다.

중국 인공지능 스타트업 '센스타임'의 안면 인식 소프트웨어에 찍힌 거리의 모습. 이 소프트웨어는 행인을 '성인' '남성' '상체 검은 옷' '하체 남색 옷'같은 기준으로 분류한다.

중국이 이른바 '솨롄(刷臉·얼굴 스캔) 대국'으로 변모 중이다. 안면 인식 기술이 온갖 분야에 적용되면서 '솨롄루주(刷臉入住·호텔 체크인)', '솨롄즈푸(刷臉支付·간편결제)', '솨롄취첸(刷臉取錢·ATM 출금)' 같은 신조어마저 쏟아지고 있다. 개인 정보 보호와 사생활 침해에 예민한 선진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얼굴 정보 제공 없이 살기 어려워

중국에선 일반 마트와 편의점뿐 아니라 관공서와 지하철, 대학, 은행 등에도 안면 인식 서비스를 도입, '얼굴 정보를 등록하지 않으면 일상생활 하기 불편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앞으로는 지하철을 탈 때도 얼굴 정보 등록이 필수가 될 전망이다. 중국은 현재 선전·광저우·지난 등 10개 대도시에서 안면 인식으로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서비스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이용자가 개찰구에 설치된 스크린에 얼굴을 갖다 대면 불과 1초 안에 승객을 인식하고, 연결된 은행 계좌에서 지하철 요금을 뽑아 간다.

스마트폰 기반 간편결제 시스템도 안면 인식 결제로 대체되고 있다. 중국은 '알리페이' 등 QR 코드를 스캔해 돈을 내는 간편결제가 주류 결제 수단으로 자리 잡으며 '현금 없는 사회'가 된 지 오래다. 한국의 '제로페이'는 이를 흉내 낸 것이다. 중국경제망은 지난달 23일 "2019년은 1억1800만명 수준인 안면 인식 결제 이용자가 2022년에는 7억6000만명으로 급증하면서 현재 보편적으로 쓰이는 QR 코드 결제 시스템을 대체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즉 3년 안에 '얼굴로 소비하는 세상'이 되면서 일반 시민은 좋든 싫든 얼굴 정보를 제공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시장조사 업체 치엔잔산업연구원은 "안면 인식 기술의 적용 범위가 넓어지면서 중국 내 관련 시장 규모도 올해 34억5000만 위안(약 5810억원)에서 5년 뒤인 2024년에는 100억5000만 위안(약 1조6925억원)으로 급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 최대 '감시사회' 우려도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AI(인공지능) 굴기' 정책 덕분에 중국의 안면 인식 기술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으로 성장했다. 센스타임, 쾅스커지(矌視科技)와 같은 중국 대표 AI 스타트업들은 인종에 상관없이 0.2초 안에 움직이는 사람의 신분을 확인하고, 정확도가 98~99%에 달하는 기술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중국의 우수한 안면 인식 기술이 시민을 감시하는 목적에 쓰일 공산이 크다"는 비판이 나온다. 안면 인식 기술에 기반을 둔 '디지털 빅브라더 사회'를 구축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안면 인식 기술을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소수민족 감시와 홍콩 시위대의 신원 파악에 사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 여성이 중국 광저우시 지하철역 개표구 앞에서 얼굴을 스캔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세계 최대의 감시 네트워크인 '스카이넷 프로젝트'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까지 중국 전역에 4억대 이상의 감시카메라가 실시간으로 작동하면서 행인들의 신원을 파악하고, 범죄자를 추적한다. 이미 중국 공안은 감시카메라를 이용해 수년간 잡지 못한 살인범을 잡아내고, 무단횡단을 하는 시민의 신원을 파악해 벌금을 물리는 등 치안 전반에 안면 인식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여기에 중국 당국은 이번 달부터 얼굴 정보 등록을 의무화하는 조치까지 시행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 2일 "중국 공업정보화부는 이달 1일 이동통신사들에 의무적으로 모바일 서비스에 가입하는 신규 고객의 얼굴 스캔을 하라는 새로운 규정을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신분증으로 신원을 확인하는 기존 관례를 얼굴 스캔으로 대체하겠다는 것이다. IT업계 관계자는 "의무적으로 수집된 얼굴 정보들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중국 정부의 자유"라며 "세계에서 전례가 없는 최대 규모의 감시사회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