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프랑스 남동부 도시 그르노블의 네이버랩스유럽(Naver Labs Europe·NLE). 파리에서 480㎞, 알프스산맥이 병풍처럼 둘러싼 150년 된 샤토(고전 양식의 프랑스 저택)를 개조한 건물이 네이버의 AI(인공지능) 연구센터였다. 컴퓨터 비전(vision) 연구팀장 그레고리 로페즈씨가 카메라가 달린 1층 초대형 TV 앞에서 팔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화면 속 로봇이 0.1초 시차를 두고 똑같이 따라 했다. 로페즈 팀장은 "사람의 동작을 인식해 다음 행동을 예측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며 "가사보조, 간병 로봇을 구현하는 데 핵심 기술"이라고 했다.

프랑스 알프스 산자락에 있는 소도시 그르노블에 있는 네이버랩스유럽의 전경(위). 아래 사진은 네이버랩스유럽의 한 연구원이 자신의 동작을 TV 화면 속 로봇이 똑같이 따라 하도록 하는 기술을 시연하는 장면.

네이버의 미래 기술 개발 자회사 네이버랩스 산하 NLE는 네이버가 온라인 중심의 사업을 생활 영역으로 넓히기 위해 만든 AI 연구센터다. 연구원 80여명을 포함해 모두 110여명이 일하고 있는 유럽 최대 AI 연구소다. 페이스북 AI리서치센터장 출신 플로랑 페로닌 박사 등 컴퓨터 비전, 머신 러닝(기계 학습) 분야 전문가들이 AI와 로봇을 접목시키는 기술 연구에 매진 중이다. 이날 네이버는 2017년 NLE를 출범시킨 이후 처음으로 언론에 공개했다.

연구소가 위치한 그르노블은 '프랑스의 실리콘밸리'로 불린다. 국립과학연구원 등의 산하 연구소와 글로벌 기업들의 연구센터에서 2만2000여명이 일한다. 이곳 연구원들은 미 실리콘밸리의 스카우트 제의에도 좀처럼 이직하지 않는다. 스키와 하이킹을 즐기고, 이탈리아·스위스로 여행하기에 좋은 천혜의 환경 덕분이다. NLE도 뒷마당엔 말들이 뛰어놀았다.

NLE는 네이버 인수 전에는 제록스의 리서치센터(XRCE)였다. 1993년 제록스가 가상의 문서 및 이미지 데이터 처리 기술을 연구하기 위해 설립한 곳으로 MIT 선정 '가장 혁신적인 50개 기업'에 선정되는 등 연구 역량을 자랑했다. 2017년 이곳이 매물로 나오자 세계 IT 업계에서 인수 경쟁이 벌어졌다. 미국 출신인 나일라 머레이 NLE 연구부문 디렉터는 "폭넓은 온라인 유저를 갖고 있고 대기업·스타트업을 섞은 듯한 독특한 기업 문화를 가진 네이버가 매력적이었다"며 "네이버에 인수되길 바라는 연구원들의 뜻이 크게 반영됐다"고 했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는 자주 그르노블을 찾아와 연구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석상옥 네이버랩스 대표는 "우리는 R&D(연구개발)에서 D(상품 개발)보다 R(연구)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고 했다. 네이버랩스 고문 김상배 MIT 교수는 "NLE는 사람과 같은 부드러운 손길로 노약자를 돌보고 가정 배달을 할 수 있는 지능 로봇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