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전 8시 10분. 한국가스공사 제주 LNG 기지 준공식을 취재하는 산업통상자원부 출입 기자들이 타고 있던 버스에 예정에 없이 주영준 산업부 에너지자원실장이 탑승했다. 주 실장은 마이크를 잡고 이날 정부가 발표한 '겨울철 전력수급 및 석탄발전 감축 대책'을 설명했다.

산업부는 이날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겨울철 전력수급 및 석탄발전 감축 대책'을 심의·확정했다. 정부는 미세 먼지 감축을 위해 올겨울 석탄발전기 8~15기를 가동 정지하고, 나머지 석탄발전기는 출력을 80%로 제한하는 상한 제약을 실시하기로 했다. 대책의 요지는 미세 먼지를 줄이기 위해 값싸지만 미세 먼지를 많이 발생시키는 석탄발전을 줄이고, 그 공백을 비싸지만 미세 먼지 발생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LNG 발전으로 메우겠다는 것이다. 주 실장은 "석탄을 줄이고 LNG를 늘리면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발생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사후(앞으로) 전기요금 인상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전기요금 인상 금기시하던 정부

정부의 탈(脫)원전·탈석탄,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으로 한전 재정난은 날로 악화하고 있지만 정부는 그동안 전기요금 인상 논의를 금기시해왔다. 지난 9월 말 현재 한전 부채는 123조8500억원에 달한다. 급기야 한전 김종갑 사장이 "콩(연료비)이 두부(전기료)보다 비싸다"며 전기요금 인상 필요성을 수차례 강조했고, 저소득층의 전기요금을 할인해 주는 필수사용량 보장 공제 제도 등 모든 특례할인제도를 폐지하겠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정부는 28일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겨울철 전력수급 및 석탄발전 감축대책’을 심의·확정했다. 정부는 올겨울 미세 먼지 감축을 위해 석탄발전 8~15기를 가동 정지하고 LNG(액화천연가스) 발전을 늘리기로 했다.

그러나 산업부는 지금까지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전기요금 인상 요인은 2030년까지 10.9%에 불과하다며 2022년까지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고 공언해 왔다. 성윤모 산업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도 "한전 사장이 언급한 요금 체제 개편을 협의한 바 없고, 정부에서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김 사장의 발언을 일축했다. 탈원전 정책 탓으로 전기요금이 오른다는 지적에는 고개를 젓던 정부가 이날 엉뚱하게 미세 먼지 대책 탓을 하면서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을 내비치기 시작한 것이다. 원전은 미세 먼지를 발생시키지 않지만 원전 가동률을 높이겠다는 말은 끝내 하지 않았다. 앞서 에너지경제연구원 노동석 박사는 "정부의 탈원전·탈석탄,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으로 2030년 전기요금이 2017년 대비 29% 오르고, 2040년엔 47%까지 오를 것"이라는 연구 분석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원전 정상 가동하면 미세먼지·전기료 두 마리 토끼 잡을 수 있다"

상당수 에너지 전문가들은 "정부가 멀쩡한 원전은 내버려둔 채 값비싼 LNG 발전을 늘려 미세 먼지를 줄이겠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원전은 다른 발전원과 달리 미세 먼지와 온실가스를 아예 배출하지도 않고, 값도 저렴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LNG 발전도 석탄 발전보다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미세 먼지와 온실가스를 상당량 배출한다. 프랑스·영국 등 선진국뿐 아니라 개발도상국들도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면서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신규 원전 건설을 추진 중이다. 그런데 우리는 원전은 줄이고, 화석연료 발전을 늘리는 '거꾸로 정책'을 고집하고 있는 셈이다.

석탄 발전 대신 LNG 발전을 늘리면 과연 미세 먼지 감축 효과가 있느냐는 데 대해 이견도 있다. 정용훈 카이스트 교수는 "원전이나 석탄화력 발전과 달리 LNG 발전은 도심 가까이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LNG가 내뿜는 미세 먼지와 온실가스가 도시민에게 미치는 영향이 결코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날 대책을 발표하면서 구체적인 원전과 LNG 발전 이용률 등은 밝히지 않았다. 무리한 탈원전 정책으로 전력 수급 문제가 발생할 경우 원전 이용률 등을 높일 수밖에 없는데, 그럴 경우 '결국 또다시 원전에 의존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이미 가동을 중지한 월성 1호기를 제외한 전체 원전 24기 중 12월 정비로 가동을 멈추는 원전은 10기, 1~2월은 6~8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