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글로벌 제조 기업에도 '디지털세'라는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제시하면서 국내 삼성전자·현대차·LG전자 등 제조 대기업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구글·페이스북·아마존 등 미국 IT 공룡을 잡기 위해 유럽 국가들이 추진하는 디지털세가 애꿎은 한국 제조 기업에도 타격을 주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OECD는 지난 21~22일 프랑스 파리에서 디지털세에 대한 공청회를 열었다. 프랑스·영국 등은 올 초 자체적으로 구글·아마존 등 IT 공룡에 연매출의 2~3%를 디지털세로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공청회는 기존 논의와 사뭇 달랐다. OECD가 지난달 휴대폰·가전·자동차 등 소비자를 대상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B2C 글로벌 대기업에도 디지털세를 적용하자는 방안을 내놨기 때문이다. 인터넷·모바일을 통해 데이터 수집, 시장조사, 마케팅을 펼치는 소비자 대상 사업이라면 어떤 유형이라도 디지털세 과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초 이 안은 현실성이 없다는 반응이 많았지만, 글로벌 IT 기업이 많은 미국이 밀어붙이면서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실제로 이날 공청회에 참석한 각국 정부와 기업 관계자들은 별다른 반발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글로벌 IT 기업들은 자신의 서버 등이 있는 국가에서만 법인세의 대부분을 낸다. 예를 들어 구글은 한국에서 영업 활동을 하지만 "서버가 싱가포르에 있다"며 한국에서는 극히 일부만납부한다. 하지만 디지털세는 글로벌 기업의 전체 이익을 일정한 기준을 만들어 구분하자는 것이다. OECD는 일반적인 영업 활동에서 나오는 통상 이익과 이에 속하지 않는 상표권 관련 이익 등의 초과 이익으로 나누자고 했다. 이후 초과 이익은 각 국가에 나눠 과세하자는 것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아직 초안이긴 하지만, 디지털세에 제조업을 포함하는 안은 이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며 "여러 시나리오를 놓고 시뮬레이션하는 중"이라고 했다.

아직 통상 이익과 초과 이익의 개념이나 초과 이익의 몇 %를 과세할지는 정해진 것이 없다. 최종 합의까지도 1년의 시간이 남았다. 하지만 이 안이 시행되면 한국 기업이 한국에 내는 세금은 감소하고, 외국에 내는 세금은 늘어난다. 조세재정연구원 관계자는 "이 논의는 국제 조세 체계를 '그라운드 제로'에서 다시 생각해보자는 차원"이라며 "현재 논의처럼 제조업이 디지털세 부과 대상이 되면 내수 시장이 작고 수출 위주 산업을 갖춘 우리나라는 기업에 걷는 법인세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한국 기업들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나라마다 법인세율이 다르기 때문에 법인세율이 높은 국가에서 많은 매출을 올리면 한국에서 세금을 낼 때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 국내 제조 대기업 관계자는 "디지털세 관련해서는 정치·외교적 문제가 섞여 있다 보니 기업이 판단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국제조세 전문가인 한성수 변호사(법무법인 양재)는 "OECD 합의 후 국가별로 본격적인 협의가 열릴 텐데 이 과정에서 국가 간 파워 싸움이 벌어질 수 있다"며 "국가 간 알력 싸움에 의한 불확실한 잣대로 과세를 하게 되면 기업들만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했다.

☞디지털세

구글·페이스북 같은 다국적 IT 기업이 세계 여러 나라에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면서도 정당한 세금을 내지 않자, 이를 보완하기 위해 추진되는 세금. 도입되고 나면 다국적 IT 기업의 본사가 있는 나라가 대부분 가져가던 세금을 각 나라가 나눠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