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7일 내국인 역차별 논란을 빚고 있는 공유 숙박 서비스를 규제 샌드박스로 지정했다. 외국인 손님만 받을 수 있도록 한 규제를 일정 기간 면제 또는 유예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국회 통과도 안 된 관련 법안을 내세우며 '주인 실거주, 연중 180일 영업'이란 족쇄를 달았다. 스타트업 업계는 "있는 규제 풀어준다는 게 샌드박스라더니 오히려 있지도 않은 규제를 덧붙이는 게 말이 되느냐"는 반응이다. '자국민이 공유 숙박을 하면 불법이 되는 세계 유일의 나라'라는 오명을 안 듣기 위해 시늉만 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규제 풀자는 샌드박스에 또 규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는 이날 '제7차 규제샌드박스 위원회'를 열고 '한국판 에어비앤비'라 할 수 있는 공유 숙박 서비스 '위홈' 등 총 8건을 규제 샌드박스로 지정했다. 규제 샌드박스란, 새로운 서비스나 신제품이 신속히 출시되도록 규제를 일정 기간 면제하거나 유예해 혁신을 촉진하는 제도다. 앞서 위홈은 '서울의 지하철역 인근 일반 주택을 내·외국인에게 숙소로 제공하는 서비스를 허용해달라'고 신청했었다.

위홈은 앞으로 최대 4년간 서울 1~9호선 지하철역 반경 1㎞ 내 실거주 가정집 4000곳에서 내국인 숙박 사업을 할 수 있다. 현재 국내 도시에서 한국인이 공유 숙소를 사용하면 불법이다. 도시민박업은 외국인만 상대하도록 규정한 관광진흥법 때문이다. 그 결과, 전 세계 191국에 보급된 에어비앤비를 한국에선 한국인만 이용할 수 없는 '역차별 코미디'가 벌어졌다. 이번 결정으로 내국인도 공유 숙소에 합법적으로 묵을 수 있게 됐다.

정부는 그러나 새 규제를 줄줄이 달았다. 내국인을 받으려면 집주인이 사는 집이어야 하고, 영업 일수는 1년에 180일을 넘길 수 없다는 게 핵심이다. 180일 규제는 공유 숙박의 내국인 차별을 푸는 대신 정부가 도입하려는 규제다. 관련 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입법 단계의 규제까지 끌고 와 갖다 붙인 것"이라며 "한마디로 무늬만 샌드박스"라고 말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정부 전체의 방침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위홈 측은 "영업 일수 규제가 있는 한 수익을 낼 수도 없고 에어비앤비와 경쟁을 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외국인 관광객의 경우 에어비앤비가 2014년 한국에 진출해 지금은 사실상 100% 선점했다. 에어비앤비에 비해 절대 열세인 한국 업체들은 내국인 상대 서비스에서 승부를 걸어야 하는 처지지만, 발이 묶여 버린 것이다.

실거주 집 영업일 제한 국가 거의 없어

공유 숙박이 보급된 세계 191국 중 주인이 실거주하는 집을 공유하는데 영업일을 제한하는 경우는 일본이 유일하다. 일본은 작년 6월 공유 숙박 전체에 대해 연간 180일의 영업 제한 조항을 신설했다. 한 숙박업계 관계자는 "일본은 실거주 주택과 빈집 모두 공유 숙박이 허용된다"며 "빈집 공유가 금지된 한국과 사정이 다르다"고 말했다. 일본의 180일 제한은 빈집이 늘고 있는 현실에서 도시 거주 인구가 유실되는 점을 막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다른 나라도 영업일 제한은 빈집에만 적용된다. 영국 런던은 빈집을 공유할 때 '90일 이내는 신고할 필요가 없고, 이 이상은 관공서에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도 빈집 공유에 연간 120일의 영업 제한을 두고 있다. 하지만 두 나라 모두 실거주 집을 공유하는 것에 대해서는 제한이 없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뉴욕과 같은 대도시도 실거주용 집을 마음대로 공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