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전 세계 스마트폰 10대 중 9대, 완성차 4대 중 3대, 평면 디스플레이 10대 중 9대는 이 회사의 산업용 공구와 장비로 만든다. 스마트폰 속 작은 나사를 돌리는 드라이버부터 자동차 강판과 알루미늄 뼈대를 결합하는 장비까지. 크기와 용도 차이만 있을 뿐이다. 첨단 제조업 생산 과정은 이 회사 장비와 함께 진화했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보유한 세계에서 가장 큰 입자가속기의 모습. 이 입자가속기에 들어가는 진공 튜브(원통 바깥쪽의 거대한 관)가 아트라스 콥코가 제작해 납품하는 제품이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의 입자가속기는 힉스 입자 등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입자를 발견·관측한 세계 최대 입자물리학 연구기관으로, 아트라스 콥코는 이렇게 연구용 진공 설비를 제작하면서 우주의 비밀을 푸는 데 동참하고 있다.

스웨덴의 대표 제조업체 '아트라스 콥코' 이야기다. 이들이 처음부터 제조업 설비로 시장을 지배했던 것은 아니다. 스웨덴 재벌가(家) 발렌베리 가문의 초석을 다진 앙드레 오스카 발렌베리가 1873년 공동 창업한 철도 건설 장비 회사는 146년 역사 동안 주력 사업을 수차례 바꿔왔다. 1차 세계 대전 전후에는 디젤 모터, 2차 세계 대전 이후엔 광산·터널 장비를 만들었다. 경부고속도로 터널도 이 회사 드릴로 뚫었다.

하지만 2년 전 회사는 지난 50년 세계 1등을 달렸던 광산 사업 부문을 분사 후 상장했다. 분사한 회사(에피록)의 주식도 갖고 있지 않아 이제는 별개 회사가 됐다. 그리고 반도체와 우주·항공 등 첨단 산업의 핵심 설비인 진공 장비 시장에 진출했다. 반세기 동안 끊임없이 이룬 것은 버리고 또다시 새로운 도전장을 내밀었다. 현재 아트라스 콥코는 5년간 54개 회사를 인수·합병하면서 4년 사이 반도체·스마트폰 등 첨단 제조업 생산 설비와 공구를 만드는 회사로 변모했다.

아트라스 콥코가 1940년대 세계 최초로 개발한 1인용 굴착 드릴.

발렌베리 가문은 스웨덴 은행 SEB와 통신장비업체 에릭슨, 가전업체 일렉트로룩스 등 100여개 기업을 소유한 스웨덴 최대 부호다. 아트라스 콥코는 발렌베리 가문이 초기에 창업한 회사로, 160년 넘게 5대에 걸쳐 유럽 최고의 산업 왕조를 건설한 그들의 경영 철학과 역사가 남아 있다.

산업의 중추를 내걸다

지난달 스웨덴 스톡홀름 아트라스 콥코 본사에 있는 산업용 공구 R&D(연구·개발) 센터에서 기자가 한 뼘 크기 드라이버를 손에 쥐고, 지름 1㎜ 나사를 스마트폰 기판 구멍에 맞췄다. 드라이버 버튼을 누르자 머리 위 경고등이 빨갛게 켜졌다. 연구원은 "나사를 잘못 조립했다는 알람"이라며 "우리가 개발한 최신 산업용 드라이버는 데이터 수집을 통해 연결된 컴퓨터가 압력과 나사 회전수를 스스로 조절하고, 불량도 미리 알려준다"고 말했다. 종전 드라이버는 작업자가 모두 수동으로 작업하고, 불량도 확인할 수 없었다. 옆에서는 드라이버를 든 로봇팔이 휴대폰에 나사를 박는 테스트에 분주했다.

회사의 핵심 모토는 '산업의 중추(Backbone of Industry)'다. 중추(척수)가 몸의 모든 부분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듯이, 제조업 전체가 돌아갈 수 있도록 혁신 장비와 설비를 만들겠다는 뜻이다. 마츠 람스트롬 CEO(최고경영자)는 "역사와 전통이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트라스 콥코가 미래 제조업의 중추로 점찍은 분야는 반도체, 우주·항공 산업과 과학 연구에 쓰이는 진공 설비 분야다. 반도체를 비롯한 정밀기계는 극도로 청정한 작업 환경에서 제작된다. 나노 단위로 쪼개지는 반도체 셀과 부품에 먼지 한 톨이라도 들어가면 제대로 작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어떠한 물질도 존재하지 않는 진공 상태를 만들어 주는 설비가 필수다.

아트라스 콥코는 진공 분야 진출 5년 만에 세계 1위 진공 설비 기업이 됐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생산 라인에서도 이 회사 설비를 쓴다. 세계 최대 입자물리학 연구소인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입자 연구는 아트라스 콥코의 진공 설비로 이뤄지고, 진공 튜브로 시속 1000㎞가 넘는 지하 교통수단을 만들겠다는 일론 머스크의 '하이퍼루프' 실험 설비도 이 회사 제품을 쓴다.

1등을 못 할 거면 손대지 마라

아트라스 콥코는 큰 분야건 작은 분야건 '1등'이 목표다. 아트라스 콥코는 새로운 분야에 진출할 때마다 그 분야 최고 기술을 가진 회사들을 모두 쓸어담는 전략을 폈다. 2014년 약 2조원에 반도체 진공 설비 회사 에드워드를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2016년 독일 레이볼드 5500억원, 한국 기업 CSK 1200억원 등 6개 진공 설비 업체를 인수했다. 아트라스 콥코의 작년 매출은 약 11조8000억원, 영업이익은 2조6000억원이다. 시가총액은 50조원이 넘는다. 미래 핵심 제조업 생산에 아트라스 콥코의 장비가 꼭 필요하고, 그들의 기술력이 다른 경쟁사들과 차별화됐기 때문에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한 것이다.

아트라스 콥코는 경쟁자가 MS(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같은 소프트웨어 기업이 될 것이라 보고, 대비하고 있다. 하드웨어를 물리적으로 업그레이드하기보다, 소프트웨어로 공장의 효율을 높이는 시대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는 3000여명에 달하는 R&D 인력 절반을 소프트웨어 개발에 투입했고, 5G(5세대) 이동통신 연결망과 각 공구에 부착된 센서로 작업 효율과 불량에 관한 빅데이터를 수집·분석하는 프로그램을 운영·개발하고 있다. 니클라스 티블린 부회장은 "변화를 예측하고 대응해 산업의 중추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우리의 성공비결은 '25% 룰'

"시장에서 4등, 5등을 할 각오로 진입해서는 선두를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차별화된 기술로 시장 1등을 할 수 있는 분야를 찾고, 과감하게 투자하는 것이 기업 경쟁력의 핵심입니다."

아트라스 콥코의 스톡홀름 본사에서 만난 마츠 람스트롬〈사진〉 CEO(최고경영자)는 이렇게 말했다. 예컨대 진공 설비는 이 분야가 '절대 강자'가 없는 시장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과감하게 수조원을 투자해 한 번에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그가 강조하는 또 다른 원칙은 '25%의 룰'이다. "현재 아트라스 콥코 제품과 설비에 들어가는 부품의 평균 75%가 경쟁력 있는 다른 업체로부터 들여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25%만큼은 우리가 개발한 기술과 부품, 지식재산권이 투입돼 완성됩니다." 특정 제품과 기술의 75%는 다른 회사가 만들거나 만들 수 있어도, 25%만큼은 '우리만이 할 수 있다'는 기술력을 보유하는 것이 시장경쟁력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람스트롬 CEO는 아트라스 콥코가 '시장을 주도하는 기업'이 아니라 '제품을 혁신하는 기업'이라고 말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나 창조적인 발명품을 내놓아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당대 산업이 요구하는 제품을 내놓기 위해 끊임없이 변신을 했다는 의미다. 그는 "AI(인공지능)와 5G(5세대 이동통신)의 시대에 어떻게든 장기적으로 진공 설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오너인 발렌베리 가문에 대해 "그들은 늘 '우리 세대가 아닌 다음 세대의 기술에 투자하라'고 주문한다. 이는 기업과 기업인에게 큰 혜택이자 강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