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업계는 일본 정부가 지난 7월 발표한 화학 소재 3종에 대한 수출규제와 화이트리스트(수출우대국) 제외를 유지하기로 한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수출규제 시행 이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은 미리 확보한 재고를 아껴쓰고 일부 제품은 국산화를 추진하는 등 노력해왔다. 앞으로도 이 같은 노력과 함께 일본 기업이 해외에 세운 합작사를 통해 수출규제 대상 품목의 재고를 확보할 것으로 알려졌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22일 "70년 동안 해왔던 일(일본산 소재 사용)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이 쉽지 않지만,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아껴쓰고 대체하는 노력을 계속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 직원들이 반도체 생산라인을 점검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앞두고 종료 통보 효력 정지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절차를 정지하기로 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날 불화수소(액체·기체),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화학 소재 3종에 대해 개별 심사를 통한 수출 허가와 화이트리스트 제외를 유지한다고 밝혔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외무상도 기자들에게 "지소미아와 수출 규제 문제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강조하며 "한국의 강경화 장관과의 회담을 조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여전히 일본의 수출규제 속에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리스크"라면서 "한·일 양국의 정치적 갈등이 산업계 피해로 이어져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이번 달 ‘고순도 액체 불화수소’의 한국 수출을 4개월 만에 처음 승인했다. 지난 7월 발표한 수출 규제 대상 화학 소재 3종 중 유일하게 허가를 하지 않다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문한 일본 화학회사 스텔라케미파의 물량을 허가한 것이다. 세계 고순도 불화수소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스텔라케미파는 올 7~9월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0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반도체 업계는 일본 정부가 향후 한국 정부와의 대화를 통해 수출규제를 철회할 수 있다는 기대와 함께 장기전에 대비하는 분위기다. 화이트리스트 제외라는 카드가 살아 있어 언제든 일본 정부가 자국산 소재의 수출길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이 걷히지 않은 것이다. 일본 소재 기업이 해외에 세운 합작사에서 물량을 조달하는 전략과 함께 국산화가 가능한 품목은 이번 기회에 대체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