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전야(前夜)의 설렘에 세계가 들썩이고 있다. 내년 5G(5세대) 이동통신과 AI(인공지능)시대 본격 개막이 다가오면서 새로운 IT(정보기술) 수요의 출현 기대감이 퍼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글로벌 대표 IT 기업들의 주가가 오르고 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시중에 풀린 막대한 유동성이 주가를 끌어올렸던 10년 전과 달리 이번 장세는 신산업·신기술 장세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9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증시에서 IT 기업들의 주가가 올 연초 대비 41% 상승했다"며 "IT 기업들의 주가가 연초 대비 59.9% 올랐던 2009년 이후 10년 만에 최고"라고 보도했다. 2009년엔 연초 주가 자체가 폭락한 상태였다. 당시 각국 중앙은행들은 '헬리콥터로 돈을 살포하듯' 파격적인 양적 완화 조치를 단행했다. 주가 폭등은 '기저효과'와 '돈의 힘' 덕분이었다. 올해는 그런 배후 효과도 없었다. 그런데도 세계 시가총액 상위 10대 기업 가운데 7개를 IT 기업이 차지했다. 미국뿐 아니라 삼성전자·알리바바·소니 같은 한·중·일 간판 IT 기업의 주가 역시 연초 대비 30~70%씩 폭등했다. 서강대 정옥현 교수(전자공학)는 "5G와 AI는 올해 시동을 건 상태이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한다고 보면 된다"며 "이를 발판 삼아 IT 기업들이 급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고 말했다.

◇5G 내년부터 본격 개막

올해 초만 하더라도 글로벌 IT 업계에서는 "혹한기가 시작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반도체 수요가 급감하면서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불황이 시작됐다. 경기 침체 우려로 스마트폰 등 소비재 수요가 감소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미·중 무역 전쟁이라는 악재까지 겹쳐 IT 분야 투자심리도 얼어붙었다. 하지만 내년부터 본격화되는 5G·AI 확산과 이에 따른 실적 성장의 기대감이 단기간의 침체 우려를 압도하는 반전이 나타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글로벌 IT(정보기술) 기업들이 주식 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사진은 올 초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IT전시회 MWC 2019에서 미국 마이크로소프트가 증강현실(AR) 기기 ‘홀로렌즈2’를 선보이는 모습.

지난 4월 한국에서 최초로 상용화된 5G는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전 세계에 깔린다. 세계이동통신공급자협회(GSA)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전 세계 27국에서 50개 통신업체가 5G를 공식 서비스하기 시작했고, 세계 109국 328개 통신업체가 5G 구축을 위한 투자를 발표했다. 일본은 2020년 도쿄 올림픽에 발맞춰 5G 상용화를 준비 중이고, 세계 최대 통신 시장인 중국은 올 하반기부터 5G 망 구축·서비스를 시작했다. 유럽 국가들도 5G 구축을 위한 업체 선정 과정에 돌입했다.

5G 시대 개막은 당장 반도체와 스마트폰 시장에 청신호다. 대용량·고성능을 필요로 하는 5G 스마트폰 시장이 커지면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기 위한 모바일 및 서버용 반도체 수요도 폭증한다. 대만의 반도체 시장조사업체인 D램익스체인지는 "내년부터 스마트폰부터 서버 시장까지 모두 활황세가 기대된다"고 분석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는 올해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1%에 그쳤던 5G 스마트폰이 내년에는 최소 10% 이상 차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5G가 4차 산업혁명으로 가는 고속도로 그 자체라는 점이다. LTE보다 데이터 전송 속도가 20배 이상 빨라지면서 초고속·초저지연 통신이 가능하다.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같은 차세대 콘텐츠 산업뿐 아니라 자동차·건물·공장 등 모든 기기와 장소에서 데이터를 수집·전송·처리할 수 있는 사물인터넷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

◇10년 걸쳐 펼쳐질 AI 시대

5G가 앞으로 1~2년간 시장을 주도하는 기술이라면, AI는 향후 10년을 책임질 기술로 꼽힌다.

5G망 구축이 마무리되면 방대한 데이터를 초고속·초저지연으로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기기에 AI가 탑재되는 시대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는 AI가 탑재돼 자율주행차로 진화하고, 건물·공장·도로의 모든 설비·가구·장비 등에도 센서와 AI가 탑재돼 스마트시티·스마트 팩토리로 변신한다. 여기에는 PC·스마트폰보다 훨씬 더 많은 전자부품과 센서, 소프트웨어가 탑재돼 모든 데이터를 AI로 수집·분석한다. 관련 IT 기업들의 실적이 폭발적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IT 기업들의 주가가 장밋빛 전망만으로 실적을 너무 앞서 폭등한 측면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팩트셋에 따르면 S&P(스탠더드앤드푸어스) 500에 올라가 있는 IT 기업들의 3분기 순이익은 미·중 무역 전쟁과 이로 인한 중국 경기 침체 등으로 작년 동기 대비 5.6% 줄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한국 대표 IT 기업들의 3분기 영업이익도 전년 동기 대비 최대 90%까지 하락했을 정도로 상황이 안 좋다. IT 업계 관계자는 “내년 5G 확산 규모와 속도가 기대를 밑돌고 AI 보급 속도가 늦춰질 경우 지금 올라간 주가는 갑작스럽게 ‘버블’로 바뀌며 주저앉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