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 자동차 회사에 다니는 김모(33)씨는 자가용 차가 없다. 직원 할인도 받을 수 있지만 당분간 살 생각도 없다. 공유 차량인 쏘카에 월 9900원 회비만 내면 필요할 때 반값에 빌려 탈 수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차를 자주 탈 일이 없는 데다 보험료·세금 등을 따지면 공유하는 것이 훨씬 저렴하다"며 "지금은 결혼과 내 집 마련을 위해 저축이 더 급하다"고 말했다.

직장인 이모(40)씨는 10년 된 아반떼를 바꾸고 싶지만 꾹 참고 있다. 최근 천정부지로 오른 서울 집을 사느라 맞벌이 소득의 절반을 대출금 상환에 쓰고 있다. 이씨는 "아이 교육비도 만만치 않아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한다"며 "가처분소득이 너무 빠듯하다"고 말했다.

집값 상승, 취업난 등 경기 악화와 공유 경제 확산으로 국내 자동차 내수 시장이 침체하고 있다. 17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국산·수입 승용차 내수 판매량은 2015년 165만대로 정점을 찍고 2016년 163만대, 2017년 158만대로 계속 줄었다. 지난해 161만대로 반짝 반등했지만, 올해 다시 감소세다. 지난 1~9월 판매량은 115만대로 작년 같은 기간 118만대보다 3만대(2%) 줄었다. 결정적 원인은 자동차 핵심 구매층이었던 30~40대가 차를 안 사면서 시장에서 이탈하기 때문이다.

30~40대 구매 감소… 50대는 늘어

자동차 내수 시장이 쪼그라든 가장 큰 원인은 30대의 구매 감소다. 2010년 신차를 가장 많이 산 연령은 30대로 전체의 24.4%를 차지했다. 그러나 해마다 감소해 지난해 17.4%, 올 상반기엔 15.4%로 줄어 50대와 40대 뒤로 밀렸다. 두 번째로 비중이 높았던 40대 역시 21.3%(2010년)에서 올 상반기 18.7%로 급감했다. 주력 소비층은 아니지만, 생애 첫 차 등 소형차 주요 구매층인 20대의 이탈 속도는 더 빨랐다. 2010년 구매자의 12.2%(15만명)가 20대였는데, 올 상반기는 6.6%로 반 토막이 났다.

반대로 50대는 자동차 시장의 최대 구매층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후(戰後) 세대보다 경제성장의 혜택을 더 누려온 '586세대'가 전 세대에서 가장 자동차 구매력이 높은 연령층이 된 것이다. 2010년 30·40대에 이어 3번째 비중(14.9%)이었던 50대는 올 상반기 19.7%를 차지, 처음으로 40대를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

차량 공유 시장이 확대되면서 법인 판매는 해마다 늘고 있다. 하지만 개인의 차량 구매 감소 속도가 더 빨라 전체 내수 시장을 키우진 못하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청년 실업과 치솟는 집값 등으로 20대는 생애 첫 차를 사지 않고, 주력 구매층인 30~40대는 차를 바꾸지 않고 있다"며 "내수 경기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는 자동차 시장은 현재 우리 경제 상황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양극화 시장

자동차 시장은 유례없는 양극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20대가 주로 샀던 경차나, 30대가 주로 샀던 중형차 판매가 줄고 대형차 판매는 늘고 있다.

대표적인 '엔트리카'였던 현대차의 아반떼 판매량은 2010년 14만대에서 지난해 7만대로 반 토막이 났다. 2012년 20만대가 팔렸던 경차는 지난해 12만대 수준에 그쳤다. 국민차로 대표됐던 쏘나타 역시 판매가 같은 기간 반 토막 이하로 떨어졌다. 현대차가 올 하반기 소형 세단인 엑센트를 단종시킨 것도 엔트리카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자동차 업체들은 소형 SUV 시장을 키우며 20~30대 구매층을 붙잡으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전체 경·소·중형차 판매량은 2015년 101만대에서 지난해 86만대로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준대형·대형차는 31만대에서 43만대로 늘었다.

브랜드 역시 양극화가 심하다. 국산차 중엔 현대차로 판매가 집중되면서 한국 GM·쌍용차·르노삼성 등 '마이너 3사'의 판매량이 급감하고, 수입차에선 메르세데스-벤츠만 독주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서민과 중산층의 구매력은 악화하는데 과거에 비해 차 값은 많이 올라 구매력이 높은 계층이 소비하는 대형차, 고급 차 수요만 일부 늘고 있다"며 "경차·소형차에 대한 우대 정책과 자동차 문화, 경기 회복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런 현상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