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우 기자

지난 5일 오전 아프리카 대륙 중남부에 있는 잠비아에서 보츠와나로 넘어가는 국경인 잠베지강(Zambezi River) 선착장. 각종 물자를 실은 트럭 100여 대가 강을 건너려고 1㎞ 넘게 줄지어 서 있었다. 강 건너편도 상황은 같았다. 다리가 없어 이 트럭들은 '폰툰(pontoon)'이라고 하는 작은 바지선을 타고 강을 건너야 한다. 폰툰이 두 척뿐인 데다 한 번에 트럭을 한두 대밖에 싣지 못하기 때문에 트럭 기사들은 보통 일주일 정도 선착장에서 기다린다. 주변 마을에서는 트럭 기사들을 위한 숙소와 식당이 성업 중이었다.

내년 3월이면 이런 풍경은 사라진다. 잠베지강에 923m 길이 '카중굴라 대교'가 개통되기 때문이다. 다리가 놓이면 트럭은 두 시간 만에 강을 건너고 통관까지 마칠 수 있게 된다.

카중굴라 대교 건설은 지역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겐 평범한 교량 공사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남부 아프리카 국가들엔 40년 숙원 사업이다. 인접 국가의 물류 속도 개선, 경제 발전으로 연결되는 선순환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상징성 있는 프로젝트였기에 한국, 일본, 중국 등 3국이 시공권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했고, 대우건설이 따냈다. 30여 년 전 아프리카에서 도로 공사를 하면서 쌓은 신뢰와 기술력이 도움이 됐다.

아프리카 물류 대동맥 뚫는다

중남부 아프리카 해상 물류는 대륙 최남단인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항을 통해 이뤄진다. 철도가 없기 때문에 육상 운송은 트럭으로 한다. 트럭이 아프리카 중부에서 남부로, 또는 그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곳이 카중굴라다. 잠비아, 보츠와나, 짐바브웨, 나미비아 등 4국 국경이 이곳에서 만난다.

교량이 없어 소형 바지선을 타고 잠베지강을 건너기 위해 줄지어 서 있는 트럭. 강 주변 마을에는 트럭 기사들을 위한 식당과 숙박업소가 성업 중이다.

카중굴라의 고질적 병목 현상 해결은 이 지역 국가의 숙원 사업이었다. 다리를 놓아야 했지만, 국가마다 재정 상태와 정치·경제 상황이 달랐던 탓에 매번 이해관계가 엇갈렸다.

그러던 중 상대적으로 재정 여건이 좋은 보츠와나와 잠비아 두 국가가 비용을 절반씩 부담하기로 합의하면서 2014년 사업이 본격화됐다. 잠비아 측 프로젝트 매니저인 갓프레이 송게야(Godfrey Songeya) 씨는 "카중굴라 대교로 중남부 아프리카 전반의 물류 효율성이 개선되고 경제 발전 속도도 빨라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30년 전 쌓은 신뢰로 중·일 제쳐

카중굴라 대교는 일본국제협력단(JAICA)의 국제 원조(援助)로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이런 경우 원조를 제공하는 나라 기업이 시공권을 갖는 게 보통이다. JAICA 역시 일본 기업이 유리하도록 특수 공법 수행 실적을 입찰 참여 조건에 넣었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 기업은 각자 국내에서 수행했던 공사 실적을 근거로 입찰에 참여했고, 보츠와나와 잠비아 정부가 이를 인정하면서 JAICA의 계획은 무산됐다. 결국 공사비 1억6200만달러(약 1890억원)를 제시한 대우건설이 수주했다. 일본은 2억달러 넘는 금액을 제시해 가격 경쟁에서 밀렸고, 중국은 대우건설보다 500억원 이상 낮은 금액을 제시했지만 수주에는 실패했다.

내년 3월 이 다리 완공되면… 일주일 걸리던 이동시간, 두시간으로 - 대우건설이 아프리카 잠비아와 보츠와나 국경 지대인 잠베지강에서 건설 중인 ‘카중굴라 대교’ 공사 현장. 지금은 트럭으로 잠베지강을 건너려면 일주일을 기다려야 하지만 교량이 완성된 후에는 두 시간이면 가능해질 전망이다. 대우건설은 일본, 중국 기업과의 경쟁을 뚫고 2014년 시공권을 따냈다. 약 30년 만의 아프리카 재진출이다.

대우건설에는 1986년부터 1991년까지 보츠와나에서 했던 5건의 도로 공사 실적이 큰 도움이 됐다. 1990년대부터 거대 자본을 앞세운 중국이 아프리카 건설 시장을 독식하면서 한국 건설사 수주는 사실상 끊겼지만 최근 현지에서 중국 건설사 시공 품질에 불만이 커지면서 한국 기업을 다시 찾게 됐다. 피우스 시온(Pius Seone) 보츠와나 측 프로젝트 매니저는 "중국 기업이 만든 도로는 10년을 못 버티고 하자가 생기지만, 대우건설이 만든 도로는 30년이 지나도록 멀쩡했다"며 "품질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중요한 공사를 맡긴 것"이라고 말했다.

아프리카는 기회의 땅, 정책적 지원을

카중굴라 대교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주변국의 관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올해 5월에는 국경을 접한 4국 대통령이 같은 날 현장을 방문했으며, 각국 공무원과 기업인도 수시로 다녀간다. 최성환 대우건설 카중굴라 현장소장은 "이 지역 경제 규모를 감안할 때 카중굴라 대교는 지금껏 없던 초대형 프로젝트"라며 "장비나 원자재는 어떤 것을 쓰는지, 인력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등 현장의 일거수일투족이 주변국엔 관심사"라고 말했다. 카중굴라 현장은 지난 5년 2개월간 단 한 건도 사망 사고가 없었다.

아프리카는 지하자원이 풍부하고 개발이 덜 돼 '기회의 땅'으로 통한다. 지금까지 중국이 시장을 독식했지만 카중굴라 대교 공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한국 기업의 기회도 많아질 전망이다. 이미 대우건설은 잠비아와 콩고민주공화국 국경을 잇는 450억원 규모의 교량 프로젝트를 제안받은 상태다. 최 소장은 "중국에 대한 회의감이 생겨나는 지금이 우리에겐 기회"라고 말했다.한만희(전 국토교통부 차관) 서울시립대 국제도시과학대학원 교수는 "한국 기업들이 아프리카에서 더 성과를 내도록 정부 차원에서 꾸준한 정책적,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62개월 공사, 웃지못할 우여곡절]

툭하면 정전되는 잠비아… 보츠와나에서 전기 끌어써
시멘트는 1500㎞ 떨어진 나미비아에서 조달

"카중굴라 대교 공사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62개월은 한 편의 드라마였습니다." 최성환 대우건설 카중굴라 현장소장은 "이번 공사는 우리 현장 직원들에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기술적으로 까다로운 공사는 아니지만, 건설 인프라가 전혀 갖춰지지 않은 데다 발주처가 두 국가였던 탓에 인력 채용, 원자재 조달 등 어느 하나 쉽지 않은 공사였다.

첫 번째 시련은 통관이었다. 잠비아와 보츠와나 양측 근로자가 공사 현장을 지나다니다 보면 수시로 국경을 넘게 되고 그때마다 통관 절차를 거쳐야 했다. 결국 양국(兩國) 정부는 이런 비효율을 없애기 위해 간편 통관 사무소를 설치했다.

자재 조달도 쉽지 않았다. 공사 초기 콘크리트 타설에 쓸 레미콘을 현지 업체에 맡겼는데, 강도(强度)가 기준에 못 미쳤다. 다른 협력사를 찾았지만 모두 함량 미달이었다. 결국 대우건설이 직접 1500㎞ 떨어진 나미비아에서 시멘트를 조달해와 레미콘으로 배합해서 쓰고 있다.

전력 공급도 불안정했다. 수력발전 의존도가 높은 잠비아 쪽이 특히 문제였다. 최성환 소장은 "가뭄이 심할 때는 15시간 정전된 적도 있다"며 "잠비아가 정전되면 보츠와나 전기를 끌어다 썼는데 그때마다 관세를 내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공사 대금 체불이었다.

잠비아 정부가 공사비의 약 10%인 173억원을 체납하면서 지난 3월 2주간 공사가 전면 중단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