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축구선수권 대회를 앞둔 2016년 5월 독일. 세계적인 초콜릿 회사 ‘페레로’가 인종주의자들의 표적이 됐다. 아이들이 즐겨 먹는 ‘킨더 초콜릿’ 포장지에 금발머리 백인 소년 대신 혼혈계 국가대표 선수들의 어린 시절 사진을 실었기 때문이다.

터키계 독일인인 일카이 귄도안, 튀니지 아버지를 가진 무슬림 사미 케디라, 가나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제롬 보아텡 선수가 그 주인공이었다. 극우조직 페기다(PEGIDA)는 히틀러의 '아리안족 우월주의'를 계승이나 하듯, 페레로의 결정에 비난을 퍼부었다. '순수한 백인'이 아닌 혼혈인이 광고 모델이 되어선 안된다는 것이었다.

2019년 한국에선 ‘82년생 김지영’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에서 주인공 김지영은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 회사를 그만 둔 여성이다. 김지영은 아이가 자라 모처럼 여유가 생기자 유모차를 끌고 공원에 가서 커피를 마신다.

옆 벤치에 앉은 직장인 무리 중 한 남자가 김지영을 흘겨보며 말한다. "맘충(엄마를 벌레로 비하한 혐오 표현) 팔자가 상팔자야. 한국 여자랑은 결혼 안 하려고." 김지영은 결국 항우울제와 수면제 처방을 받는다. 산후우울증에서 육아우울증으로 이어지는 여성 동료나 친구·지인들처럼, 김지영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엄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소설은 영화로 재탄생했다. 영화 개봉 후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모습을 보면, 실제 현실과 영화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주연배우 정유미씨 소셜미디어(SNS) 계정에는 하루 3000여개의 비난 댓글이 달린 날도 있을 정도니 말이다.

킨더 초콜릿과 82년생 김지영, 두 사건의 공통점은 ‘혐오’다. 한 인종이 다른 인종을, 한쪽의 성이 다른 쪽 성을 일방적으로 증오하는 '혐오주의자'들이 공론장에서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목소리를 낸다. 일상을 파고든 '혐오'는 아무 죄가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보이지 않는 행동의 굴레를 씌운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있다.

그저 아이를 태우고 집 밖을 나왔을 뿐인데, 이동의 자유를 스스로 제한한다.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할 때마다 계속해서 자신을 해명하게 된다. 잘못된 비방에 맞서 끊임없이 자기 변호를 해야 하는 것은 진이 빠지는 일이다.

김지영에게 ‘맘충’이라 비난한 남성은 어떤 생각일까. 미국 하버드대 교수 일레인 스캐리는 저서 ‘타인을 상상하는 일의 어려움’에서 "타인의 고통은 쉽게 간과할 수 있기 때문에, 남에게 고통을 주면서도 아무런 동요도 느끼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독일 저널리스트 카롤린 엠케는 저서 ‘혐오사회’에서 "혐오와 증오는 느닷없이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훈련되고 양성된다"고도 했다.

두 지성의 말을 종합하면, 한국의 '여성 혐오'는 피의자들이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 훈련되고 양성되고 있을 지도 모른다. 혐오의 대상도 여성에서 장애인·성소수자·다문화 가족·노숙자 등 태생이나 삶의 방식이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들로 스멀스멀 넓혀질 수도 있다.

지구 상에서 가장 살기좋은 도시 중 하나라는 캐나다 밴쿠버에도 수많은 홈리스(노숙자)가 있다. 시민들은 그들이 조금 다른 방식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집이 없다고 혐오의 눈길을 던지는 사람도 없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밴쿠버 시민들이 홈리스를 이주하기로 한 정부 결정에 반발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시민들은 "우리 이웃인 홈리스들이 왜 강제 이주해야 하느냐"며 시위에 나섰다.

팔뚝보다 더 긴 숟가락으로 자기 배만 채우려다 아무 것도 먹지 못해 굶어 죽는 지옥, 같은 숟가락으로 서로 음식을 먹여주며 건강히 살아가는 천국을 그린 탈무드 우화가 한국·캐나다 사회와 닮았다. 우린 천국과 지옥 중 어느 쪽일까.

‘여성 혐오’의 거울 상으로 ‘남성 혐오’ 역시 패륜(悖倫)적 양상으로 치닫는 현상을 보면 아마도 지옥에 더 가까워진 것 같다. 문명인으로서의 합리성과 공감 능력을 다시 찾아와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