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인터넷 판도를 뒤흔들 이해진(네이버 창업자)-손정의(소프트뱅크그룹 회장) 동맹이 탄생한다. 네이버와 일본 소프트뱅크가 각자의 자(子)회사인 라인과 야후재팬을 통합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이다. 양측은 이르면 이달 말 통합안에 최종 합의할 전망이다. 라인은 일본 내 이용자가 8000만명이 넘는 1위 모바일 메신저이고, 야후재팬은 5000만명 이상이 쓰는 1위 포털이다. 통합이 성사되면 1억명 이상 이용자를 확보, 단숨에 일본 인터넷 시장을 장악하게 된다. 한국으로 치면 네이버와 카카오톡이 하나가 되는 격이다.

13일 밤 일본 니혼게이자이(日經·닛케이)신문의 '야후·라인 통합' 보도가 나온 직후인 14일 오전 일본 증시의 라인과 Z홀딩스(야후재팬의 모회사)는 "양사 간 통합을 검토하고 있으며 최종 결론이 나면 공개하겠다"고 공시했다. 한국 증시의 네이버도 "라인은 Z홀딩스와 사업 경쟁력 확보 등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고 공시했다. 전날 보도를 사실상 인정한 것이다.

양측의 통합이 성사되면 미국(구글·페이스북·아마존·트위터)과 중국(알리바바·텐센트)이 주도하는 세계 인터넷 패권 경쟁에 네이버·소프트뱅크 동맹이 한 축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해진·손정의 동맹의 출현은 당장 동남아 시장 진출에 사활을 걸고 있는 중국의 알리바바·텐센트엔 엄청난 위협이 될 전망이다.

◇손정의가 꿈꾸던 '일본판 알리바바'

외신과 본지 취재에 따르면, 네이버와 소프트뱅크는 각각 50% 지분을 갖는 합작법인(중간 지주회사)〈그래픽〉을 설립할 계획이다. 이 합작법인 아래에 Z홀딩스를 두고 다시 그 밑에 라인과 야후를 두는 형태다. 현재 라인 지분 73%를 보유한 네이버는 합작법인 출범에 앞서 나머지 27% 지분이 합작법인 출범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라인을 둘로 쪼개(물적 분할) 라인이란 이름의 사업법인과 합작법인으로 나눌 것이라는 분석이다. 소프트뱅크 측도 Z홀딩스 지분을 출자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격적인 양사 통합은 손 회장 측이 먼저 제안했다고 14일 닛케이가 전했다. 손 회장과 이해진 창업자는 지난 9월에 만나 통합 방침을 결정하고, 라인과 야후재팬의 통합을 넘어 소프트뱅크그룹과 네이버가 전략적 파트너로서 서로 적극 지원하자는 데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프트뱅크 고위 임원은 닛케이에 "손 회장은 '일본판 알리바바'를 실현하길 원한다"고 밝혔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처럼 쇼핑부터 메신저·간편결제·포털에 이르는 모든 온라인 비즈니스를 망라한 플랫폼을 완성하려면 라인과 통합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통합이 성사되면 네이버·소프트뱅크 동맹은 일본 인터넷·모바일 시장에서 막강한 지위를 차지한다. 82조엔(약 882조원) 규모 일본 간편결제 시장에서 1위 라인페이(등록자 3690만명)와 2위 페이페이(소프트뱅크의 자회사·등록자 1900만명)를 합치면 3위 NTT도코모의 디하라이(1000만명)를 압도한다. 온라인 쇼핑 분야에선 2위 야후(거래액 2조3400억엔)가 10~20대에서 인기인 라인쇼핑과 손잡으면 1위 라쿠텐(3조4000억엔)을 위협할 전망이다. 웹툰·게임·뉴스·인터넷은행·가상 화폐 등 일본 온라인 시장 전 영역이 이번 통합의 영향권에 들 전망이다.

◇네이버·소프트뱅크 동맹, 中과 경쟁

네이버와 소프트뱅크 동맹은 아시아 인터넷 시장의 맹주 자리를 노리는 중국 알리바바와 텐센트의 강력한 대항마로 떠오를 전망이다. 알리바바와 텐센트는 모바일 결제 서비스 알리페이, 위챗페이를 앞세워 동남아 공략에 사활을 걸고 있다. 중국 내수를 넘어 글로벌 시장으로 가는 길목이 바로 동남아 시장이다. 라인은 대만·태국·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주요국에서 1000만~4500만 이용자를 보유한 1위 모바일 메신저다. 라인 망가(웹툰), 라인 뮤직(음원)도 동남아에서 강세다. 소프트뱅크는 동남아 최대 차량공유 업체 그랩의 주요 주주다. 그랩은 모바일 결제 서비스인 그랩페이를 내놓은 상태다. 알리바바·텐센트가 함께 투자한 중국 최대 차량공유 업체 디디추싱은 이미 그랩에 밀려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하는 네이버·소프트뱅크 동맹은 중국의 두 '공룡'에도 버거운 상대일 수밖에 없다. 인터넷 업계 한 관계자는 "그간 일본에서 소프트뱅크와 경쟁에 온 힘을 쏟았던 네이버는 이제부턴 마음 놓고 동남아를 공략할 것"이라고 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독주해온 구글·페이스북 등 미국 IT 기업들로서도 껄끄러운 상대가 등장한 셈이다. 향후 최대 경쟁 분야인 인공지능(AI)만 해도 소프트뱅크그룹은 비전펀드를 활용해 100조원대의 엄청난 금액을 집중 투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