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 월면토가 담긴 직육면체 모양의 대형 컨테이너가 달 표면 환경을 그대로 구현한 지반열 진공 챔버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월면토 위에는 달 탐사 임무를 수행할 탐사로봇이 놓여 있다.

달 표면 환경을 그대로 구현할 수 있는 '인공 달'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건기연)이 지난 5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연구원에서 공개한 세계 최대 규모의 '지반열 (dusty thermal) 진공 챔버' 얘기다.

이날 현장에서는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4.7m이고 무게 100t에 달하는 지반열진공챔버의 철문이 서서히 열렸다. 이 안으로 깊이 2m, 최대 중량 25t의 인공 월면토(달 표면의 흙)가 담긴 컨테이너가 들어갔다. 월면토 위에 놓여 있던 달 탐사로봇(로버)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철문을 닫고 진공 상태와 온도를 조절하면 실제 달의 환경처럼 만들 수 있다.

건기연의 지반열진공챔버는 달과 같은 진공 상태를 구현하면서 그 안에 월면토를 담아냈다는 것이 기존 진공챔버와 가장 다른 점이다. 흙먼지가 있으면 진공을 만들기 어렵다. 공기를 뽑아내는 펌프에 먼지가 들어가면서 오작동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각국에서 만든 진공챔버에는 대부분 흙이 없었다. 미 항공우주국(NASA)도 진공챔버를 50개나 보유하고 있지만, 흙을 담은 대형 챔버는 없었다고 한다. 나사는 2016년 진공 속에 월면토 환경을 구현할 수 있는 장비 개발을 건설연 극한건설연구센터에 요청했고, 건기연은 공기 흐름을 제어하는 특수한 기술을 통해 펌프 등의 고장 없이 진공을 만들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찾아냈다.

강력한 정전기를 띠는 달의 흙먼지는 탐사 장비에 달라붙으면 심각한 손상을 유발할 수 있다. 건기연이 만든 먼지가 있는 챔버에서는 로버나 인공위성 등 우주 탐사 장비가 실제 달 표면과 같은 환경에서 견딜 수 있는지 테스트할 수 있다. 또 최저 영하 190도에서 최고 영상 150도까지 엄청난 일교차가 발생하는 달 표면과 같은 극한의 환경도 조성할 수 있다. 건기연 관계자는 "달에 얼음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개발 중인 시추기도 이 안에서 실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건기연은 월면토로 달 기지를 짓는 연구도 하고 있다. 지구에서 건설 자재를 우주선에 실어 보내는 게 아니라 달에 있는 흙을 재료로 해서 기지를 만든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전자레인지에 쓰는 마이크로파로 월면토를 녹이고 이를 원하는 모양으로 구조물을 찍어내는 실험을 하고 있다. 이장근 센터장은 "월면토로 만든 소재는 콘크리트 강도의 3분의 2 수준"이라고 말했다. 건기연은 모의 극한 지형 실험실, 건설 재료 3D(3차원) 프린팅 실험실, 인공지능(AI) 및 영상 처리 실험실 등도 갖췄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