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고속도로가 깔리는 것이다. 그러나 고속도로 출구가 어디로 어떻게 날 지는 아직 모른다."

금융사들은 개인정보 보호법·신용정보법·정보통신망법 데이터 3법이 통과되면 무궁무진한 기회가 열릴 테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지는 알 수 없다는 반응을 내놨다. 다만 데이터 활용도가 높아지고 이를 활용하려는 금융권의 경쟁은 치열해질 것이란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오는 19일 여·야간 본회의에서 데이터 3법이 통과되면 금융사들의 ‘고객 맞춤 경쟁’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산업적으로는 핀테크 스타트업의 사업진출 문턱이 낮아진다는 데 의미가 있다. 기업간 경쟁우위는 데이터 조합과 해석·활용 능력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연합뉴스 제공

◇"원하는 데이터 쉽게 얻는 고속도로 깔린다"

금융사들은 이들 법이 통과되면 데이터를 손쉽게 얻을 수 있다는 데 주목했다. 데이터3법이 통과되고 공인된 기관에서 비실명화 데이터를 구할 수 있게 되면 그간 구하지 못했던 데이터를 쉽게 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데이터 고속도로’라고 표현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현재는 금융사 내부에 쌓인 데이터도 활용하기 쉽지 않은데, 앞으로는 구할 길이 마련된다는 뜻"이라고 했다. 데이터3법이 통과되면 시중은행은 필요한 데이터를 국가가 지정한 데이터거래소 등에서 구해 예측모형을 더 정확하게 만들 수 있다.

특히 상품 개발에 다양하게 나설 수 있고, 마케팅 기법도 향상될 수 있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고객 적중률을 높일 수 있다"고 했다. 회사가 보유중인 데이터 10개만 갖고 예측모형을 만드는 것보다는 비실명 데이터 1000개를 모아 예측모형을 만드는 것이 정확도가 더 높기 때문이다. 개개인에 맞춘 상품이 출시된다는 점에서 ‘금융상품의 다품종 소량생산 시대 개막’이라는 표현을 쓴 금융사도 있었다.

대출상품 기획, 예금상품, 마케팅 프로모션 기획에 더 섬세하게 나설 수 있고 고객이 요청하기 전에 필요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다. 경쟁사보다 한 발 먼저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국내 인터넷은행 관계자는 "고객여정(customer journey)에서 고객에게 가치를 줄 수 있는 대목(happy point)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했다.

금융사간 우위는 데이터 확보와 해석, 활용에 따라 갈릴 전망이다. 일부 금융사는 데이터 추출과 해석을 위한 통계·코딩 교육을 전직원에게 제공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데이터 응용·해석 능력이 금융사의 핵심 역량이 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했다.

지금도 통신회사와 금융사, 금융사와 IT회사의 제휴는 활발하지만 실제 의미있는 제휴가 늘어날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았다. 무한경쟁 속 합종연횡이 활발해진다는 뜻이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지금은 일단 동맹을 걸쳐놓고 보자는 식의 제휴가 많지만 (법이 통과되면) 구체적으로 양쪽 회사에 어떤 혜택이 있는 제휴인지 더 깊이있게 들여다보고 실행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금융지주사들은 금융지주회사법도 함께 고쳐져야 데이터3법의 실질적인 혜택이 가능하다고 본다. 금융그룹은 ‘특별법’인 금융지주회사법에 우선 적용되는데, 계열사별 고객의 거래내역을 ‘영업 목적’으로 융·복합할 수 없게 돼 있다. 법령과 시행령에 따르면 ‘신용위험 관리 등 경영관리’ 목적으로만 정보의 융·복합이 가능하다. 금융지주 산하의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데이터3법이 통과돼도 관계 법령이 제대로 따라줘야 효과가 있다"고 했다.

◇"핀테크 기업의 허들이 낮아진다"

토스나 뱅크샐러드 등으로 대표되는 핀테크 기업들의 사업기회는 더 많아진다. 보유하고 있는 금융데이터가 열악한 상황에서 한 번에 양질의 데이터를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금융지주사 계열 금융사들이 10개의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면, 현재 핀테크 기업들은 1~2개의 데이터만을 가지고 있는데, 단숨에 기존 금융사처럼 10개의 데이터를 가질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이런 효과는 토스나 뱅크샐러드 등 대중에 이름을 알린 핀테크 기업보다도, 아이디어가 좋은 신생 핀테크기업에게 더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다. 국내 P2P 핀테크업체 관계자는 "기존 금융사들도 데이터3법이 통과되면 보유 데이터량이 늘긴 하지만, 신생업체에게는 단숨에 허들을 낮춰 겨뤄볼 판이 마련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했다.

핀테크 업체는 마이데이터 사업 진출 통로도 열린다. 마이데이터 사업은 데이터의 주도권을 은행에서 고객으로 옮겨오는 것으로 고객의 데이터를 위임 받은 마이데이터 사업 운영에도 나설 수 있다. 시중 은행에겐 열리지 않는 길이다.

금융사들은 핀테크 업체들이 마이데이터 사업을 하며 다양한 개인 데이터를 수집해 신용관리·상품추천·재무현황 분석 등의 업무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데이터를 모으고 가공해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데이터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업무에 집중하다보면 실제로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쪽에 갈증을 느낄 수 밖에 없다"면서 "이 때문에 ‘토스’가 인터넷은행 면허를 따는 데 집중하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