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페이스북⋅바이두⋅네이버 등 인터넷 기업들 기존 반도체 업체 영역 투자 가속

구글, 페이스북 등 미국의 IT 공룡들에 이어 중국과 한국의 인터넷 기업들도 기존 반도체 기업들의 영역이었던 지능형 반도체 개발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기존의 범용 프로세서로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초고성능 연산이 필요한 솔루션 개발이 어렵기 때문에 AI 서비스에 최적화된 프로세서를 직접 개발하는 것이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바이두, 네이버 등 아시아를 대표하는 인터넷 기업들이 최근 들어 AI에 특화된 ASIC(application specific integrated circuit)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ASIC은 일반적인 집적회로와 달리 특정한 용도에 맞도록 제작된 주문형 반도체를 말한다. AI 전용 ASIC은 개발 기간이 오래 걸리고 많은 투자 비용이 필요해 주로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 대형 글로벌 기업들을 중심으로 개발이 추진돼왔다.

메이스 카운티 구글 데이터센터의 내부

IT 기업들이 반도체 기업으로부터 고성능 중앙처리장치(CPU)를 구매하지 않고 더 높은 비용이 드는 프로세서를 직접 개발하는 이유는 기존의 일반적인 CPU 하드웨어로는 AI 서비스에 요구되는 대규모 연산처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가장 먼저 알아차린 건 구글이다. 2010년대 들어 구글은 폭증하는 데이터 수요에 대응하려면 무한대로 데이터센터를 늘려야 한다는 난제에 맞닥뜨리게 되는데, 이보다는 프로세서를 혁신해 데이터센터의 성능 자체를 끌어올리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를 통해 탄생한 것이 바로 딥러닝 신경망 네트워크의 추론 능력을 가속화할 수 있는 텐서프로세서유닛(TPU)이다. 이 TPU는 이세돌 기사와의 대국으로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던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의 핵심 하드웨어이기도 하다. ASIC의 일종인 TPU는 특정 작업에 맞춰 만들어졌으며 명령어 세트도 칩 자체에 하드코딩돼 있다. AI 솔루션 구동을 위해 맞춤으로 제작된 반도체인 셈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현재 AI 반도체 분야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반도체는 크게 엔비디아가 이끄는 그래픽처리장치(GPU)와 인텔·알테라의 프로그래머블반도체(FPGA) 그리고 ASIC 등 세가지 정도인데 ASIC의 경우 인터넷 기업이 AI 서비스를 구동하는데 있어 GPU나 FPGA보다 빠른 속도, 우수한 전력효율을 자랑한다"며 "다만 비싼 초기 제작 비용과 장시간의 개발 비용이 필요하다는 점 때문에 아직 상용화가 덜 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아시아의 인터넷 공룡들도 구글의 방식을 따르는 추세다. 중국 최대 인터넷 검색업체 바이두는 지난해 베이징에서 열린 AI 개발자 컨퍼런스 행사에서 AI 연산에 특화된 ASIC '쿤룬(Kunlun)'을 공개했다. 260테라플롭스(TFlops) 수준의 성능을 갖춘 이 칩은 초당 512기가바이트(GB)의 데이터를 주고 받으며 데이터센터뿐 아니라 자율주행자동차 구동에도 쓰일 수 있는 초고성능 칩이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는 지난 9월 GPU 10개의 계산능력을 가진 AI칩을 개발해 클라우드에 적용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국내 대표 인터넷 기업인 네이버 역시 대응에 나섰다. 네이버는 AI 반도체 스타트업인 퓨리오사AI에 최근 두번째 투자를 단행했다. 퓨리오사는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AI 반도체 스타트업으로 데이터센터와 자율주행자동차 등의 서버에서 AI 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반도체를 개발하고 있다. 현재 퓨리오사AI는 구글과 마찬가지로 ASIC 형태의 AI 전용 반도체를 개발 중에 있으며 내년에는 ASIC의 구체적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미국의 시장조사기관 리포트링커(ReportLinker)에 따르면 2023년까지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은 연평균 53.6% 성장해 연간 108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얼라이드마켓리서치(Allied Market Research)도 오는 2025년 AI 반도체 글로벌 시장규모가 378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에서도 AI 반도체 수요의 급성장에 대응하기 위해 AI에 특화된 ASIC 개발에 정부 투자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ASIC이 막대한 자본을 지닌 해외의 IT 공룡을 중심으로 개발되고 있는 실정이어서 국가 차원에서 민관 협력을 통해 개발 속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관계자는 "AI 반도체는 소재, ICT, 생산시스템 등의 기술을 종합적으로 요구하는 융합기술"이라며 "국가적 차원에서 부처·연구소 간 연계·협업을 강화해 기초·원천 연구 및 산업저변 확대를 위한 중장기적인 지원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