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연말 인사에서 임원 20%를 줄인다는 소문이 나돌아 초상집 분위기입니다."(5대 그룹 주력 계열사 임원)

"올해는 신년 약속을 잡는 임원이 그 어느 때보다 적은 것 같습니다."(10대 그룹 직원)

연말 임원 인사를 앞두고 국내 주요 대기업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움츠려 있다. 최악 실적에다 대기업 총수들의 세대교체, 여기에 신세계가 본격 연말 인사 철도 되기 전에 사상 처음으로 CEO(최고경영자)를 외부에서 수혈하는 충격파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11월이면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한다는데, 올해는 무엇보다 실적이 엉망이라 더욱 어수선하다"고 말했다. 금융 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10대 그룹 상장사 중 3분기 실적을 발표한 49사의 영업이익 합계는 전년 동기(33조9821억원)보다 52.48% 감소한 16조1473억원이다.

◇독해지고 빨라진다

조원태 회장 체제가 시작된 한진그룹은 이달 중 임원 인사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그룹 안팎에서는 "지난해 임원인사를 못했기 때문에 상당히 폭이 큰 인사가 예상된다"며 "특히 한 해 항공 농사를 결정하는 3분기(7~9월) 실적이 크게 악화됐기 때문에 최고경영진에서 '임원 30% 감축' 지시를 내렸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한진그룹은 보통 12월에 임원 인사를 단행했는데, 시기를 앞당기고 변화 폭을 확대한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SK그룹은 주력 계열사 사장단 인사에서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임원 숫자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한 재계 인사는 "SK텔레콤·SK이노베이션·㈜SK 등의 대표이사 3년 임기가 올해로 끝나지만, 이들에 대한 최태원 회장의 신임이 두텁기 때문에 변화가 크진 않을 것"이라며 "대신 실적 악화를 겪고 있는 계열사에서는 조직 축소와 함께 임원 감축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도 내년 경영 전략을 세울 때 비용 10%를 절감하라는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임원 규모도 다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지만, 전체 인사 시기는 늦춰질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 관계자는 "11·12월에 예정돼 있는 이재용 부회장의 파기 환송심 재판과, 사장·부사장 등 고위 임원이 기소돼 있는 삼성바이오 사건, 삼성전자 노조 와해 사건의 12월 1심 선고가 나온 뒤에야 인사가 이뤄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롯데그룹은 최근 5대 그룹 중 처음으로 비상 경영을 선포해 구조 조정설이 나오고 있다. 대대적 사업 구조 조정을 단행한 LG디스플레이에서는 임원 25% 감축이 진행 중이다. 김혜양 유니코써치 대표는 "상당수 기업이 경영 악화 등으로 임원 구조 조정을 실시 중이기 때문에 내년 100대 기업 임원 숫자는 올해보다 100명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과감해진다… 임원 인사도 이종 결합

신세계그룹은 지난달 컨설팅 회사 베인앤드컴퍼니 출신 50세의 강희석씨를 이마트 대표이사로 영입하는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 현대차는 지난 1일 닛산 출신인 클라우디아 마르케스를 멕시코 법인장(CEO)으로 선임했다. 또 비슷한 시기에 정의선 부회장의 측근으로 분류됐던 맨프레드 피츠제럴드 제네시스 사업부장(부사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순혈주의' 분위기가 강했던 국내 재계에서 외부 인재 영입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기업 평가 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국내 500대 기업 CEO들의 출신을 분석한 결과 2018년에는 외부 경력 CEO 비율이 24.3%였는데, 올해는 27.8%로 크게 늘었다. 박주근 대표는 "기업 내 순혈주의가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 전략을 쓸 때는 효과적이었지만, 급변하는 경영 상황에서는 외부 수혈을 통해 대응력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고 했다.

최근엔 완전히 다른 업종에서 인재를 영입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SK그룹은 최규남 전 제주항공 대표를 부사장으로 영입했고, LG그룹은 그룹 전략을 총괄하는 ㈜LG 경영전략팀장으로 베인앤드컴퍼니 한국 대표 출신인 홍범식 사장을 영입했다. 포스코 역시 '신성장 부문' 수장으로 오규석 전 대림산업 사장을 선임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