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이 자체 개발 중인 고성능 AI(인공지능) 연산 반도체 플랫폼(기반기술) 자이언(Zion).

"알리바바 자체 기술인 '알리 알고리즘'을 적용해 인터넷 기업의 속도로 1년 반 만에 이 칩을 설계했다."

장젠펑 알리바바그룹 CTO(최고기술책임자)는 지난 9월 25일 중국 항저우(杭州)에서 열린 '압사라콘퍼런스 2019'에서 알리바바가 자체 개발한 '한광 800'이라는 반도체 칩 제품을 소개했다. AI(인공지능)의 머신러닝(기계 학습) 작업에 특화된 AI 가속 칩이다. 장젠펑 CTO는 "이 칩을 알리바바 서비스 내 광고, 제품 검색, 자동 번역, 맞춤형 추천 등에 쓸 계획"이라며 "알리바바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가 비약적으로 향상될 것"이라고 했다.

인터넷과 소프트웨어를 통해 세계 시장을 제패해온 글로벌 IT(정보기술) 기업들이 이번에는 반도체 개발에 뛰어들었다. 전문 기업들이 내놓은 범용(汎用) 반도체 대신, 자신들이 다루는 데이터 특성이나 사업 환경에 적합한 맞춤형 반도체를 따로 개발해 사용함으로써 서비스 효율성을 극대화하겠다는 것이다. AI와 5G(5세대 이동통신) 등 첨단 기술의 확산으로 반도체 수요가 높아지자, 인텔과 퀄컴 같은 독점적 반도체 기업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측면도 있다. IT 업계 관계자는 "미래에는 거의 모든 기기에 반도체가 들어가므로 반도체 기업의 기술 패권이 더 강해질 수 있다"면서 "글로벌 IT 공룡 기업들도 이 때문에 자체 칩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했다.

대표적인 기업이 페이스북이다. 이 회사는 올해 4월 웹사이트 구인란에 SoC(시스템온칩·통합반도체), 주문형집적회로(ASIC), 펌웨어 조직 등을 신설하기 위한 매니저를 모집한다는 공지를 내고, 반도체 칩을 자체 개발할 전담 조직 구성에 나섰다. 업계는 페이스북이 앞으로 출시할 VR(가상현실) 헤드셋과 스마트 스피커에 자체 개발한 칩을 탑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페이스북은 '자이언(Zion)'이라는 고성능 AI 연산 반도체 플랫폼(기반기술)에도 투자 중이다.

구글도 구글 서비스에서 적용했을 때 범용 제품보다 더 높은 성능을 보여주는 'AI 연산 프로세서'를 자체 개발했다. TPU(텐서프로세서유닛)로 불리는 이 칩은 데이터 분석과 딥러닝(신경망기반 심층학습)용으로 구글은 이 칩을 자사 데이터센터에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마존도 음성 인식 시스템인 알렉사가 탑재된 AI 기기들의 품질과 응답 시간을 개선하기 위해 자체 AI 칩 개발을 추진 중이다. 애플·화웨이·삼성전자도 머신러닝을 위한 자체 반도체를 개발 중이며, 자동차 회사 테슬라는 삼성전자와 공동으로 자율주행 연산 칩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업계는 이러한 대형 IT 업체들의 자체 AI 반도체 개발 붐이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사업을 하는 대만의 TSMC와 삼성전자에 호재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기존 파운드리 산업의 고객 명단엔 애플·퀄컴·엔비디아 등 반도체 전문 기업만 있었지만, 앞으로는 구글·MS·알리바바 등과 같은 소프트웨어 기업들도 추가될 것"이라며 "이는 파운드리 산업 성장에 좋은 기회"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