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국내 자동차 시장이 불황에 허덕이는 상황에서도 가격이 수억원대에 이르는 수입 스포츠카나 고급세단의 판매량은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슈퍼카의 대명사로 꼽히는 람보르기니는 올들어 10월까지 100대 넘게 팔렸고 롤스로이스도 지난해보다 30% 넘게 판매량이 늘었다.

지난해 11월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람보르기니 데이 서울 2018’ 행사에서 전시된 우루스(왼쪽)와 아벤타도르 SVJ

고급 스포츠카와 럭셔리카는 자산가나 고소득 전문직, 연예인, 스포츠스타 등으로 수요층이 한정돼 있어 경기의 영향이 거의 없는 시장으로 꼽힌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까지 고가 수입차업체들이 잇따라 선보인 신차에 고액 자산가들의 관심이 쏠리면서 판매량이 크게 증가했다.

여기에 최근 일부 연예인들을 중심으로 비싼 차를 타면서 부(富)를 과시하는 문화가 확산된 점도 슈퍼카나 럭셔리카의 판매량이 꾸준히 늘고 있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 ‘SUV 신차의 힘’ 람보르기니, 우루스 앞세워 판매량 100대 넘어서

3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고가 수입차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꼽히는 람보르기니와 롤스로이스, 포르셰는 올들어 지난달까지 판매량이 모두 전년동기대비 두자릿수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람보르기니는 10월까지 누적 판매량이 106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 판매량 7대에 비해 1414.3% 증가했다. 지난해 전체 판매량(11대)의 10배에 가까운 판매대수를 이미 지난달 달성한 것이다.

람보르기니의 국내 연간 판매량이 100대를 넘어선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지난 2015년 집계가 시작된 이후 람보르기니의 국내 판매대수는 2016년 20대, 2017년 24대에 불과했다.

람보르기니가 브랜드 최초로 선보인 SUV 모델 우루스

올들어 람보르기니의 판매량이 크게 증가한 것은 지난 5월 출시한 신차 우루스가 큰 인기를 모았기 때문이다. 우루스는 판매가 시작된 지 5개월만에 람보르기니 전체 판매량의 절반이 넘는 58대가 판매됐다.

람보르기니가 최초로 선보인 SUV라는 상징성을 가진 우루스는 다른 람보르기니 모델에 비해 국내 판매가격도 낮아 소비자들의 관심을 끈 것으로 분석된다.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와 우라칸 등이 기본트림 기준으로 3억원을 훌쩍 넘는 가격을 형성하고 있는 반면 우루스는 2억5000만원부터 판매된다.

전세계 부호들이 주로 소유하는 초고가 세단인 롤스로이스도 올들어 10월까지 판매대수가 126대로 전년동기대비 37% 증가했다. 롤스로이스의 선전을 이끈 모델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판매가 시작된 브랜드 최초의 SUV 컬리넌이었다. 올해 컬리넌은 국내에서 41대가 팔려 롤스로이스 모델 가운데 최다 판매량을 기록했다.

롤스로이스가 브랜드 최초로 출시한 SUV 컬리넌

이 밖에 포르셰도 올들어 10월까지 3351대가 판매돼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3% 늘었다. 수입차업계에 따르면 국내 판매실적을 공식 발표하지 않는 페라리 역시 올들어 판매량이 이미 100대를 돌파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모든 고가 수입차업체들이 지난해보다 판매가 늘어난 것은 아니다. 지난해 브랜드 최초의 SUV 르반떼를 앞세워 국내에서 1660대를 팔았던 마세라티는 르반떼를 이을 후속모델을 내놓지 못하면서 올들어 누적 판매량이 전년동기대비 30.4% 줄어든 894대를 기록했다. 벤틀리 역시 SUV 모델인 벤테이가에 쏠렸던 관심이 걷히면서 올들어 10월까지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4.9% 급감한 73대에 그쳤다.

◇ 슈퍼카로 富 과시하는 시대…'무늬만 회사차' 규제, 실익 없다는 지적도

올해를 포함해 최근 몇 년간 수억원대의 고가 수입차 판매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는 과거에 비해 비싼 차로 자신의 재력을 드러내는데 대한 거부감이 줄어든 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젊은 층은 물론 최근 전세대로 인기가 확산되고 있는 힙합음악에 몸 담고 있는 가수들의 경우 고가 수입차로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는 것이 일상화된지 오래다.

래퍼 도끼의 경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 벤츠 G클래스 AMG, 롤스로이스 고스트 등 자신이 가진 수억원대의 수입차를 공개한 바 있다. 지난 9월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낸 래퍼 장용준(활동명 노엘)의 사고차량인 메르세데스 AMG GT도 국내에서 2억원이 넘는 가격에 판매된다.

메르세데스-AMG GT R

한 수입차업체 딜러는 "요즘은 연예인들이 자신의 능력으로 번 돈으로 구입한 고가의 차량들을 거리낌없이 공개하고 이에 대해 대중들도 별다른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며 "최근에는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큰 돈을 거머쥔 사람들이나 사업으로 돈을 번 신흥부자들의 구매 문의가 많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 규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업과 별다른 연관성이 없는 고가의 스포츠카 등을 법인용으로 구매해 이용하는 풍조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부는 지난 2016년 ‘무늬만 회사차’를 규제하기 위해 1년에 최대 800만원만 회사 비용으로 처리고 구입비와 유지비를 포함해 1000만원 이상으로 비용으로 인정받으려면 별도의 운행일지까지 작성하도록 세법을 개정한 바 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800만원을 넘어선 금액은 다음해로 넘길 수 있고 운행일지 역시 명확히 검증하기 어렵다"며 "고가 수입차를 법인용으로 타는 ‘꼼수’를 개정된 세법이 제대로 규제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