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바이오벤처 뉴냅스의 시각 장애 치료 프로그램 '뉴냅비전'의 임상시험을 승인했다. 뉴냅비전은 눈이나 시신경은 문제가 없지만 뇌의 시각을 담당하는 부분이 다쳐 사물을 보는 데 어려움을 겪는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약물을 먹거나 주사를 맞는 방식이 아니다. VR(가상현실)로 새로운 자극을 반복적으로 가해 뇌의 다른 부분에서 시각 정보를 받을 수 있도록 발달시키는 원리다. 뉴냅스는 현재 임상시험을 할 환자 84명을 모집 중이다. 뉴냅스 나현욱 최고운영책임자(COO)는 "국내에서 허가 절차를 마친 뒤 해외 진출까지 목표로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국내외에서 '디지털 치료제'가 새로운 치료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디지털 치료제란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이나 VR처럼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하는 치료 기술을 말한다. 시장조사업체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디지털 치료제 시장은 지난해 17억3000만달러(약 2조원)에서 연평균 20%씩 성장해 2025년에는 86억7000만달러(약 1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앱으로 약물중독, 우울증 치료

디지털 치료제는 주로 앱을 통해 환자들의 치료를 돕는 방식을 이용하지만, VR이나 게임, 웨어러블 기기 등을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픽=김하경

2017년 9월 미국 디지털 헬스 기업 페어테라퓨틱스는 중독 치료용 앱 '리셋(reSET)'을 개발해 FDA 품목 허가를 받았다. 의사가 알코올이나 약물중독 환자에게 이 앱을 처방하면 환자는 프로그램을 내려받아 약물 사용 여부 등을 입력한다. 환자는 앱을 통해 충동에 대한 대처법을 훈련받는다. 임상시험에서 리셋을 사용한 환자군에서 금욕을 유지한 비율이 40.3%로, 사용하지 않은 환자 17.6%에 비해 높았다. 마약성 진통제인 오피오드 중독을 치료하는 앱 리셋오(reSET-O)도 지난해 말 FDA의 허가를 받았다. 회사는 최근 불면증과 우울증 치료 앱도 개발하고 있다.

일본 오츠카제약과 미국 프로테우스디지털헬스는 공동으로 '아빌리파이 마이사이트'를 개발해 2017년 11월 FDA 승인을 받았다. 이 약은 조현병 치료용 알약에 센서를 넣은 형태이다. 환자가 약을 복용하면, 센서가 위산에 반응해 스마트폰에 신호를 보낸다. 정신질환자가 약을 제때 정량 복용하도록 유도해 치료 효과를 높여준다. 미국 아킬리인터랙티브랩은 소아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치료용 비디오 게임인 'AKL-T01'을 개발했다. ADHD 환자가 아이패드로 외계인을 조종하는 비디오게임을 하면, 특정 신경회로에 자극이 가해져 치료가 된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국내에선 의사 출신들이 개발 나서

디지털 치료제 산업은 아직 초기 단계이다. 현재 전 세계에서 30여 업체가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 치료제는 기존 신약 개발에 비해 유리한 점이 많아 성장 가능성이 크다. 신약 하나를 개발하려면 평균 1조원의 연구·개발 비용이 든다. 전임상시험(동물시험)부터 임상 1~3상 시험까지 거쳐야 하고 단계마다 실패 확률도 높다. 제품이 시판되기까지 10년이 넘게 걸린다. 반면 디지털 치료제는 개발 비용이 신약 개발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전임상시험이 필요 없고 임상시험 기간도 통상 1~2년으로 짧다.

국내에서도 디지털 치료제 개발이 시작됐다. 웰트는 근감소증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근감소증 환자들은 치료제가 따로 없어 운동과 식이조절에 의존한다. 웰트는 앱으로 환자의 평소 관리 상태를 파악하고 개인 맞춤형 운동을 제안한다. 또 하이는 치매를 예방하는 카카오톡 챗봇 서비스 '새미'를 내놨다. 카톡 채팅을 통해 계산, 언어, 집중력 훈련을 하는 방식이다. 뉴냅스와 웰트, 하이 모두 대표가 의사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 밖에 라이프시맨틱스는 암 생존자 건강 상태를 측정해 관리를 돕는 소프트웨어 '에필 케어M'을 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