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부산 기장군에 있는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자력본부를 찾았다. 국내 '1호' 원전인 고리 1호기는 지난 1977년 완공 후 40년 만인 지난 2017년 6월 국내 원전 중 처음으로 영구 정지돼 해체를 앞두고 있다.

발전소 내부에는 '새로운 시작! 안전한 관리! 완벽한 해체 준비!'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고리 1호기 주제어실에 들어서자 각종 기기에 부착된 '영구 정지'라는 스티커가 눈에 띄었다. 이미 가동을 멈춘 원자로 출력은 '0'을 나타내고 있었다. 수백 개에 달하는 스위치에는 오작동을 막기 위해 커버가 씌워져 있었다. 사용후핵연료(폐연료봉)의 잔열(殘熱) 냉각 설비와 화재 대비 장치 등 안전관리 설비를 제외하고 원자로 운전을 위한 기기는 모두 멈춰 있었다. 주제어실에서는 직원 5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정상 가동할 때는 10명씩 6개 조가 24시간 교대 근무를 했지만, 지금은 절반인 5명이 한 조로 5개 조가 교대 근무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이날 행사는 한수원 측이 기자들에게 고리 원전 1호기 해체와 신고리 5·6호기 건설이 안전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권양택 고리1발전소장은 "사용후핵연료가 임시 건식(乾式) 저장시설로 옮겨지기 전까지 냉각·전력·방사선 감시 설비 등은 그대로 운영된다"고 설명했다.

사용후핵연료 중간 저장시설 없어, 지연 불가피

현재 고리 1호기 폐연료봉 485개는 냉각을 위해 습식(濕式) 저장시설인 저수조에 보관돼 있다. 당초 정부는 2022년 6월까지 최종 해체 계획서를 승인한 후 해체 작업에 착수, 사용후핵연료 반출을 거쳐 2032년 말까지 부지 복원 등을 마치고 해체를 완료한다는 계획이었다.

2017년 6월 19일 부산 기장군 고리 원자력본부 1호기 영구 정지 선포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이 탈(脫)원전 정책을 선언하고 있다(왼쪽). 고리 원전 1호기의 사용후핵연료 다발이 발전소 내 습식 저장시설인 저수조에 보관돼 있다(오른쪽). 당초 정부와 한수원은 2024년 말까지 건식 저장시설을 건립해 사용후핵연료를 반출하겠다고 했지만, 정책 표류로 부지만 확보한 채 착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 계획에 따르면 당초 정부와 한수원은 2024년 말까지 고리본부 내에 임시로 건식 저장시설을 마련해 2025년 말까지 사용후핵연료 반출을 마칠 계획이었다. 그러나 임시(중간) 저장시설 건립에 대한 정부 정책 결정이 표류하면서 해체 일정 지연이 불가피하게 됐다. 앞서 박근혜 정부는 2016년 7월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중간 저장시설과 영구 처분장 건설 계획을 내놨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2017년 7월 '사용후핵연료 재(再)공론화' 방침을 밝히고 이를 전면 백지화했다. 정부는 지난해 5월에야 '사용후핵연료 관리 정책 재검토 준비단'을 발족했고, 다시 1년이 지난 올 5월 말에야 재검토위원회가 출범했다.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포화 상태가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데도 정부는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앞서 정부는 1983년부터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방폐장)을 건설하려 했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9차례나 표류한 끝에 32년 만인 2015년에야 경주에 중·저준위 처리장만 준공한 바 있다.

사용후핵연료 관리 정책에 대한 논의가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탓에 한수원은 고리본부 내에 건식 저장시설 부지만 확보해 놓고 아직 착공을 못 하고 있다.

한수원 관계자는 "당초 정부 계획대로라면 2025년까지 건식 저장시설을 마련해 사용후핵연료를 옮길 예정이었지만, 건식 저장시설을 건립하는 데 최소 7년이 걸리기 때문에 빨라야 2027년에나 본격적인 해체 작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핵심 기술·장비도 미비

당초 한수원은 올 6~12월 해체 계획서 공람이나 공청회 개최 등으로 주민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부산 기장군과 울산 울주군 간 주도권 다툼으로 공청회조차 못 여는 등 난항을 겪고 있다. 원전 해체에 필요한 핵심 기술과 장비도 아직 다 개발하지 못했다. 한수원은 원전 해체에 필요한 상용화 기술은 58개로, 이 가운데 아직 확보하지 못한 기술이 13개이고, 핵심 장비 11개 중 9개는 앞으로 개발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신한울 3·4호기를 비롯한 신규 원전 6기의 건설을 백지화하는 대신 원전 해체 산업 육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당장 국내 첫 해체인 고리 1호기의 사용후핵연료 중간 저장시설 건립 계획도 수립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이런 계획은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