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 사이에 성공으로 가는 등용문이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500스타트업의 투자를 받고, 이곳이 운영하는 '시드(seed·씨앗) 프로그램'에서 4개월간 기술·마케팅·판매·투자 등 실전 교육을 받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탄생한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의 비상장 기업)만 14개다. 동남아시아 최대 차량 공유 업체인 그랩, 미국의 클라우드(가상 저장공간) 소프트웨어 기업인 트윌리오 등이다. 한국에선 e스포츠 커뮤니티 오피지지(OP.GG), 오디오 서비스 스푼라디오가 '500스타트업 얼럼나이'(동문)다.

서울 강남구 구글캠퍼스에서 만난 500스타트업의 크리스틴 차이 대표는 "지난 10년간 미국·중국은 물론이고, 동남아·중동·아프리카 가릴 것 없이 74국에서 2210여 스타트업에 투자했다"며 "지역, 창업자 성별, 인종과 무관하게 가능성 있는 스타트업은 무조건 밀어준다는 게 우리의 원칙"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구글캠퍼스에서 만난 500스타트업의 크리스틴 차이(Tsai) 최고경영자(CEO)는 "전 세계엔 우리가 아직 만나지 못한 인재가 무수하다"며 "실리콘밸리와 중국이라는 양대 스타트업 배출 시장을 포함해 전 세계가 스타트업 전성시대다"라고 말했다. 그는 "500스타트업은 지난 10년간 미국·중국은 물론이고, 동남아·중동·아프리카 가릴 것 없이 74국에서 2210여 스타트업에 투자했다"고 했다. 투자 스타트업 수에선 단연 세계 최고의 스타트업 투자사다.

◇세계 2000여 스타트업 투자

500스타트업의 투자 영역은 전 세계다. 차이 대표는 이 중에서도 동남아와 중동·아프리카를 눈여겨본다고 했다. 그는 "현재 500스타트업은 동남아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펀드만 3개를 운용한다"며 "동남아는 인구 5억명이 넘는 데다 평균 연령이 30세 이하여서, 경제·산업이 젊은 만큼 미래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이집트·케냐·남아공·레바논·나이지리아 등 다른 투자자가 찾지 않는 지역에 있는 스타트업에도 꽤 많이 투자했다. 그는 "포화 상태인 미국, 중국보다 이런 미개척 지역일수록 성공 확률도 높고, 성공 때 돌아올 과실도 크다"고 말했다.

유색인종이나 여성 창업자의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도 각별하다. 투자한 스타트업 가운데 42%가 여성이 창업한 곳이다. 한국계 미국인인 차이 대표는 "구글·유튜브 등 실리콘밸리 기업에서 마케팅 매니저로 일하면서, 다양성의 중요성을 절감했다"며 "남성·백인 창업자가 생각하지 못하는 신규 서비스·제품이 분명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헤어 용품·서비스 스타트업인 메이븐(Mayvenn)이 그런 사례"라며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디산 이미라(Imira)가 창업한 이 회사는 흑인이나 아시안 등 유색인종을 위한 붙임머리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그동안 붙임머리는 대부분 금발이었어요. 창업자는 본인이 흑인이었기에 이런 문제를 깨닫고 창업의 기회를 찾은 셈이죠."

◇창업자 4개월 훈련해 성공 확률 높여

500스타트업은 투자한 스타트업들을 샌프란시스코 본사로 초청해 교육하는 '시드 프로그램'으로 유명하다. 4개월짜리 이 프로그램은 기수마다 30여 업체를 선발한다. 지원하는 스타트업은 매년 8000여 개로, 합격률은 1∼2% 정도다. 스타트업 창업자는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혼자서 기술이나 시장 분석, 해외 진출 등 모든 분야를 꿰뚫어야 하지만 그게 쉬울 리 없다. 그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창업자의 멘토로서 아마추어였던 이들을 프로페셔널로 바꾼다"며 "투자사 입장에서도 우리가 돈을 넣은 스타트업 창업자의 마음가짐과 이들의 전략을 낱낱이 알 수 있다"고 했다.

주목하는 투자 분야를 묻자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을 나눠서 봐야 한다"고 답했다. 차이 대표는 "미국·중국처럼 창업 생태계가 발달된 곳에서는 바이오·우주 항공·인공지능(AI) 같은, 세상을 놀라게 할 최고 수준의 테크놀로지(deep technol ogy)를 갖춘 스타트업을 찾는다"며 "한 번 대박이 나면 정말 엄청난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동남아, 중동, 아프리카 등은 전자상거래나 모바일앱과 같이 소비자에게 편리함을 주는 서비스가 유망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