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사우디아라비아 사막 한가운데 '엔터테인먼트 수도(首都)'를 건설하는 복합단지 개발 사업에 뛰어든다. 인프라 건설에만 9조원을 투입하는 '키디야(Qiddiya) 프로젝트'로, 사우디가 총 7000억달러(약 815조원)를 들여 야심 차게 추진하는 국가 경제 개조 사업 '비전 2030'의 하나다. 삼성은 1조원대 스포츠 콤플렉스 건설 작업을 시작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수도 리야드 서남부 사막에 건설할 예정인 초대형 엔터테인먼트 복합단지 '키디야' 조감도. 삼성물산이 시공사로 참여할 예정이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현지 시각 29일 오후 사우디 수도 리야드의 리츠칼턴호텔에서 열린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에서 이영호 사장이 사우디 측과 키디야 프로젝트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29일 밝혔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스포츠 스타디움과 수영장 등을 건설하는 사업에 참여하는 내용으로, 계약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1조원 규모로 전해졌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미래 핵심 사업지로 공들이고 있는 중동 경영이 본격화하는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사막에 '엔터테인먼트 수도' 짓는 초대형 프로젝트

키디야 프로젝트는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서남쪽으로 45㎞ 떨어진 사막지대에 초대형 엔터테인먼트 복합단지를 세우는 사업이다. '왕국의 엔터테인먼트 수도'를 지어 국민 삶의 질을 향상하고 관련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다. 현장 규모는 334㎢로, 서울시(605㎢) 넓이의 절반이 넘고, 미국 플로리다에 있는 디즈니월드의 2.5배 규모다. 테마파크와 워터파크, 스피드파크, 실내 스키장 등 첨단 엔터테인먼트 시설이 조성된다. 1만 가구가 넘는 별장용 주택과 상업지구도 들어선다. 사우디 정부는 이곳 인프라 건설에만 80억달러(약 9조3200억원)를 투입한다. 2022년까지 1단계 사업을 마무리하고, 2035년 최종 완공할 계획이다. 사우디는 2030년 연간 1700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삼성 관계자는 "이번 양해각서를 통해 우선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스포츠 스타디움과 수영장 등을 건설하는 사업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 등 설계·조달·시공(EPC) 능력을 보유한 삼성 건설부문 핵심 계열사들과 대규모 협력 사업도 가능할 전망이다. 앞서 삼성물산은 사우디에서 리야드 지하철, 라빅·쿠라야 민자 발전 프로젝트 등 1조~2조원 규모의 대형 사업 3개를 잇따라 따냈다.

◇사우디에 공들인 이재용… 업계 "앞으로 수주 더 늘어날 것"

삼성물산의 이번 수주에는 이 부회장의 역할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탈(脫)석유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중동이 21세기 새로운 기회의 땅"이라고 강조하며, 4차 산업혁명을 맞아 새로운 도약을 추진하는 중동 각국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달 삼성물산의 사우디 지하철 공사 현장을 방문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 부회장은 지난 9월 추석 연휴 직후 사우디를 찾아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만났다. 당시 출장길에는 삼성물산 경영진과 홍원표 삼성SDS 사장이 동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에서는 한국 에버랜드 건설 과정과 이후 주변 도시의 성장 등 역사에 큰 관심을 보였고,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한 삼성물산의 시공 능력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지난 6월 이 부회장과 빈 살만 왕세자는 청와대와 삼성 영빈관인 승지원에서 하루 두 차례 만나기도 했다.

삼성은 이 부회장과 빈 살만 왕세자의 돈독한 비즈니스 관계를 바탕으로 앞으로 삼성의 수주 물량이 더 늘어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석유 의존 경제에서 벗어나 첨단 기술과 투자 허브로 변신하기 위해 21세기 최대 단일 프로젝트인 '비전 2030'을 추진 중이다. '중동판 실리콘밸리'로 꼽히는 미래 신도시 '네옴(NEOM)' 건설에만 5000억달러(약 582조원)를 투입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사우디가 추진하는 이 프로젝트들에 5G(5세대 이동통신)와 인공지능(AI) 등 첨단 ICT(정보통신기술)를 갖춘 삼성전자가 뛰어들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키디야 프로젝트 합류가 삼성발(發) 2차 중동 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의 중동 사업 확대는 국내 관련 기업에도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