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 출범 한달만에 국내사용자수 넷플릭스 제쳤지만 양질의 콘텐츠 확보가 과제

한국 미디어 시장이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로 인해 빠른 속도로 재편되고 있다. 국내 미디어 생태계도 OTT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전략을 구축할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이 흐름을 놓칠 경우 미디어 산업에서 경쟁력을 잃고 몰락해버린 대만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국내 기업들이 합종연횡을 시도해 덩치를 키우더라도 ‘규모의 경제’로 글로벌 서비스와 경쟁하기는 어려운 만큼 ‘양’보다는 ‘질’에 초점을 맞춰 콘텐츠 수급을 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넷플릭스의 대항마로 전망되는 디즈니 플러스가 오는 11월 12일 서비스를 시작한다.

24일 미디어 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OTT 형태는 크게 혼합 유형·해외사업자 유형·인터넷기업 유형·유료방송사업자 유형 4가지로 구분된다.

혼합 유형은 콘텐츠사업자와 네트워크 사업자와의 결합 또는 제휴를 통해 OTT를 서비스 하는 것으로 대표적으로 최근 출범한 ‘웨이브’가 있다. 해외사업자는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으로 글로벌 차원의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대부분 국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인터넷기업 유형은 포털이나 인터넷 사업자들이 기존 이용자를 대상으로 동영상 서비스를 부가적으로 제공하며 제휴를 통한 서비스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유료방송사업자 유형은 전통적 유료방송사업자들이 기존 서비스를 보완하기 위해 신사업 확장을 목적으로 만든 모델이다.

여러 모델 중 가장 성공한 기업은 넷플릭스라고 볼 수 있다. 넷플릭스는 지난 2014년 이후 가입자, 매출, 영업이익을 급속히 확대해 세계 최대 OTT 사업자로 자리매김했다. 최근 5년간 가입자 증가율이 26.4%에 달하는데 특히 해외 가입자 증가율이 연평균 48.1%다.

정용우 한국전파진흥협회 연구위원은 24일 OTT포럼 세미나에서 "국내 시장은 유료구독자 예상 최대치가 1400만명으로 1조원 시장에서 넷플릭스 등과 경쟁하는 것"이라며 "국내 OTT의 경우 기존 방송채널을 스트리밍하고, VOD 형태의 단순 서비스 방식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넷플릭스가 한국 제작진, 배우들과 함께 제작한 오리지널 콘텐츠 킹덤의 한 장면.

그러나 국내 OTT들의 롤모델이 반드시 넷플릭스가 될 필요가 없다는 분석이다. 김용희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날 세미나에서 "국내에서 넷플릭스가 OTT의 모범답안으로 불리지만, 최근 주가 흐름을 보면 디즈니의 새 OTT인 디즈니 플러스가 공개된 이후 다른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올해 5월부터 9월까지 디즈니의 주가가 11.73% 상승했다면, 넷플릭스는 12.52% 하락했다.

넷플릭스가 콘텐츠 수급을 위해 사용하는 비용은 연간 8조원에 달한다. 김 교수는 "넷플릭스는 (지속적으로 방대한 양의) 콘텐츠 수급을 위해 많은 자금을 쏟아부으며 현금 흐름이 좋지 않다"며 "반면 이미 품질이 높은 자체 콘텐츠를 많이 보유한 디즈니는 효과적인 콘텐츠 수급 전략을 짜고 있다"고 설명했다.

디즈니 플러스는 타사 콘텐츠 수급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관련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것. 이에 디즈니 플러스는 월 6.99달러로 넷플릭스 정액제 반값에 서비스가 가능하다. 최근에는 미국 최대 이동통신사 버라이즌이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 고객들에게 디즈니 플러스 1년 무료 구독권을 주기로 할 정도로 공격적 행보를 펼치고 있다. 버라이즌 무제한 요금제 가입자만 약 5000만명에 달한다.

마블 시리즈가 OTT 드라마로 제작돼 디즈니 플러스에서 서비스된다.

최근 SK텔레콤과 지상파 3사가 연합해 출시한 OTT ‘웨이브’의 경우 출발은 좋다. 국내 모바일 빅데이터 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의 24일 분석에 따르면 지난 9월 18일 서비스를 시작한 웨이브는 9월 월간 사용자(MAU·한 달간 서비스를 쓴 비중복 이용자 수)가 264만명을 기록했다. 넷플릭스(217만명)를 웃돌아 주요 OTT 앱 중 국내 1위에 해당한다. 통합되기 전 푹 이용자 162만명(8월)과 비교하면 한 달 만에 62% 증가한 것이다. 일일 사용자로 살펴봐도 웨이브는 일평균 약 80만명으로 넷플릭스(51만명)를 넘어섰다.

OTT업계 한 관계자는 "웨이브가 국내 월 순증 이용자에서 넷플릭스를 제쳤다고 하지만 이게 지속적인 흐름인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며 "콘텐츠 양만 많다고 OTT가 성공하기는 어렵고 국내 플랫폼만이 가능한 특화 콘텐츠와 함께 더 다양한 요금제를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웨이브 앱의 구글 플레이 평점은 1.5점(5점 만점) 수준에 그치고 있다.

웨이브가 2023년까지 투자하기로 한 콘텐츠 투자 비용은 약 3000억원에 이른다. 김용희 교수는 매년 3000억원의 콘텐츠 투자도 부족하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콘텐츠가 왕이라는 말이 OTT 시장에서는 거의 진리나 다름없다"며 "핵심적이고 소비자에게 소구되는 콘텐츠를 누가 가져가느냐에 따라 향후 OTT 승부 결판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OTT에 맞춘 콘텐츠 지원사업을 개발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승엽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미디어산업진흥팀장은 "국내 콘텐츠 지원사업은 기존 방송제작 위주의 지원사업으로, OTT 콘텐츠 관련 지원사업은 없는 만큼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종관 법무법인 세종 전문위원은 "대만의 경우 포청천, 꽃보다 남자 등으로 대표되는 콘텐츠 강국이었지만, 시장 흐름을 놓쳐 지금은 중국이란 배후 시장을 놓고도 경쟁력을 잃었다"며 "적당히 통제된 경쟁 체제가 갖춰져야 산업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만큼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OTT 서비스의 성장 지원과 규제 등과 관련해 새로운 정책을 만들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