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파이브 기반 칩을 탑재한 미니 컴퓨터.

미국 인텔과 영국 암(ARM) 등이 독식해 온 CPU(중앙처리장치) 반도체 설계 시장에 집단 지성에 기반한 '공짜 설계'라는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했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리스크파이브(RISC-V)라는 공개형 반도체 설계를 기반으로 만든 칩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리스크파이브는 반도체 핵심 기술인 설계도를 공개해 누구나 무료로 사용·수정할 수 있도록 한 이른바 오픈소스(open source)형 반도체 기술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 윈도와 대적하는 공개 운영체제(OS) '리눅스(Linux)'와 비슷한 셈이다. 미국 UC버클리 연구진이 개발했고, 2014년 세계 최대 반도체 콘퍼런스인 '핫 칩스'에서 데뷔했다.

지금까지 CPU 설계 시장에서 PC용은 인텔, 모바일 기기용은 ARM이 주도해왔다. 전 세계 휴대전화 51억대 대부분이 ARM 설계에 의존하고 있다. 칩 제조사는 이들의 설계를 사용하는 대신 사용료(로열티)를 지불한다. 하지만 리스크파이브 설계를 사용하면 이런 로열티 지출이 발생하지 않는다. 아낀 비용만큼 칩 가격은 저렴해진다. 이코노미스트는 "최신 스마트폰처럼 소매가가 비싼 물건은 칩 가격이 큰 고려 사항이 아닐 수 있지만, 저렴한 제품은 다르다"고 했다. 저작권 협상이 필요없다 보니 칩 제작 기간도 크게 단축된다. 통상 칩 설계 사용을 위한 저작권 협상에 보통 6개월~2년이 걸린다. 자금력과 시간이 부족한 스타트업이 계약 협상 없이 바로 칩을 만들어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미·중 무역 분쟁을 겪는 중국 기업의 입장에서는 오픈소스형 반도체 설계는 수출 제한 품목이 아니라는 점도 매력적인 요소다. 알리바바는 지난 7월 첫 리스크파이브 기반 칩 '쉬안톄(玄鐵) 910'을 선보였다. 또 샤오미(小米)의 웨어러블(wearable·착용형) 기기 자회사 화미(華米)도 리스크파이브 기반 칩을 이용한 스마트워치를 생산 중이다. 지난 5월 ARM에서 거래 중단 통보를 받은 화웨이(華爲)도 리스크파이브 개발팀을 꾸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리스크파이브 설계는 한계도 뚜렷하다. 이코노미스트는 "ARM은 지난 수십년간 설계에 맞는 소프트웨어 도구를 개발해왔고, 인텔은 개발·테스트·제조를 거쳐 완성 칩을 고객에게 공급해왔다"며 "이들과 비교했을 때 리스크파이브 설계에 사용되는 기법은 아직 정교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