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3일 금강산관광 시설을 현지 지도하면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남측 시설들을 싹 들어내라"고 주문했다. 이에 대해 우리 재계에서는 "피땀을 흘려 금강산관광 사업을 성사시킨 현대그룹을 북한이 ‘토사구팽’했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23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현대그룹 본사 전경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그룹은 금강산관광 사업을 시작한 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대북송금 혐의로 수사를 받고 고(故) 정몽헌 회장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등 숱한 시련을 겪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금강산관광 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핵무기를 완성한 이후 더 이상 우리 기업에 대해 이용가치가 없어졌다고 판단한듯 하다"며 "그렇다고 해서 금강산에 남겨진 흔적에 대해 막말을 쏟아내고 정리대상으로 폄하하는 것은 정 회장과 현대그룹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현대그룹의 금강산관광 사업이 본격화된 것은 지난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아들인 정몽헌 회장과 함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 사업권을 따내는데 성공했고 한 달 뒤 금강산관광이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정주영 명예회장은 소 500마리를 이끌고 북한을 방문하는 등 김정일 위원장의 마음을 얻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금강산관광을 포함한 각종 대북사업으로 현대그룹의 시련이 시작된 것은 정주영 명예회장이 눈을 감은 뒤인 2002년부터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현대그룹이 북한에 비밀리에 거액의 돈을 송금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2003년 정부가 특검을 수용하기로 하면서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됐다.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은 아버지 정주영 명예회장의 뜻을 이어 대북사업에 공을 들였지만, 대북송금 등과 관련한 혐의로 특검수사를 받았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진은 정 회장 추모 사진전에서 고인의 사진을 어루만지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특검 수사결과 현대그룹은 금강산관광 등 각종 대북사업 과정에서 북한에 5억달러를 송금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재계에서는 현대그룹이 ‘햇볕정책’을 표방했던 정부의 압박을 견디기 어려워 대북송금을 했다는 ‘동정론’이 많았지만, 특검의 강도높은 수사를 피할 길은 없었다. 결국 대북송금과 비자금 조성 등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부담을 이기지 못한 정몽헌 회장은 2003년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현대그룹의 금강산관광 사업은 그룹의 전체적인 실적 악화로도 이어졌다. 정몽헌 회장이 대북사업 특검 수사를 받으며 경영에 집중하지 못하는 사이 현대전자와 현대건설이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핵심 계열사였던 현대상선도 자동차 운반선 등 여러 알짜사업을 매각해야만 했다.

2008년 박왕자씨가 북한군의 총에 맞고 숨져 금강산관광이 전면 중단된 이후에도 현대그룹의 시련은 계속됐다. 정몽헌 회장에 이어 아내 현정은 회장이 경영을 맡았지만, 해운업종이 극심한 불황을 맞으면서 경영위기가 심화된 것이다. 결국 2016년 현대증권을 포함한 금융 계열사들마저 매각대상이 됐고 현대그룹은 대북사업 20년만에 중견기업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현대그룹이 몰락하는 사이 남한에서 넘어온 자금과 금강산관광 사업을 통해 막대한 돈을 거머쥔 북한은 핵무기를 만드는데 열을 올렸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압박과 경제제재가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북한은 핵 개발을 지속했다.

국내외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은 현재 수십기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바웰 B. 벨 전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은 지난 11일 주미특파원 출신 언론인 모임인 한미클럽에 보낸 서한을 통해 "북한이 한반도에서는 핵무기를 사용할 역량을 확보했다고 판단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핵무기 개발과 현재 우리 정부의 일방적인 ‘구애’로 북한은 남북관계에서 확실한 주도권을 잡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며 "20년간 정부를 믿고 숱한 시련을 감수해 온 현대그룹만 희생양으로 남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