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기업들은 국내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에 대해 별로 큰 관심이 없습니다. 범칙금 아니면 과징금이 크지 않습니다. 어제 찾아봤더니 2018년까지 우리 기업이 해외 당국으로부터 받은 과징금은 3조6000억원입니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2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CEO 조찬 간담회'에서 "국내에서도 공정거래가 갖고 있는 법규를 잘 준수해 주시기 바란다"며 이렇게 말했다. 참석자들의 표정은 순간 굳어졌다. 이날 행사에는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 공영운 현대차 사장, 금춘수 한화 부회장, 이우현 OCI 부회장 등 기업인 300여 명이 참석했다. 조 위원장이 취임 이후 처음으로 기업 CEO들을 만난 자리였다.

재계와 첫만남 - 22일 조성욱(왼쪽) 공정거래위원장이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CEO 조찬 간담회'에서 '공정한 시장경제 생태계 조성을 위한 공정위 정책 방향'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는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 등 기업인 300여명이 참석했다.

그는 이들 앞에서 "여기 오신 많은 분께서 성공하고, 외부에 나가서도 우리나라를 알리는 훌륭한 기업의 대표들이지만, 일부 사업자 측면에서 보면 경쟁 구도가 꼭 공평하지는 않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뼈 있는 말'을 던지기도 했다. 이날 한 참석자는 "(시민운동가 출신인) 전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보다 덜할 줄 알았는데, 얘기를 들어 보면 '재벌 개혁' 드라이브를 더 세게 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삼성전자·현대차 등을 방문해 대기업 기(氣)를 살려 경제 활력을 높이겠다고 나서는 상황에서 공정거래위원장은 기업 CEO들 앞에서 처벌 강화 등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를 던지자, "혼란스럽다"는 반응도 나왔다.

◇"중견기업에 대한 감시·제재 강화"

조 위원장은 이날 대기업뿐 아니라 자산 5조원 이하 중견기업에 대한 조사·제재 강화, 중소벤처기업 및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부당 단가 인하, 판촉 행사 비용 떠넘기기 등 '경제검찰'로서 조사·제재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총수 일가 사익 편취, 부당 내부 지원 등은 자산 규모 5조원 미만 기업집단에서 (대기업 집단보다) 오히려 더 많이 일어나고 있다"며 "5조원 미만 기업집단에 대해서는 과거보다 많은 자료를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산 5조원 미만 기업집단은 총수 일가 사익 편취 금지 등의 제재는 받지 않지만, 일감 몰아주기 등 부당 지원 금지 규제는 적용 대상이다.

조 위원장은 또 경기 상황과 무관하게 공정경쟁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대기업이) 국내외 불확실성 심화로 어려움이 커진 상황에서 하도급 기업, 납품업자에 불공정한 거래를 요구할 수 있다"며 "여러분은 장기적으로 이러한 일은 안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경고성' 메시지를 던졌다.

◇"일본 수출 규제로 인한 것은 예외로"

조 위원장은 우리나라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이 여전히 높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대기업 중에서도 상위 재벌들이 가진 영향력이 크다"며 "성과가 좋고 효율성이 좋아서 규모가 커진 것에 대해서 인위적 규제를 안 하지만 총수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다수의 계열사를 보유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재벌 개혁에 더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점을 시사했다. 조 위원장은 그동안 공정위의 재벌 개혁 정책에 대해 "재벌 개혁을 크게 하지는 않았다. 저희가 많이 제재하지는 않았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소기의 성과가 나왔다는 말씀도 하지만 객관적으로 평가하면 아직 피부로 느끼기에는 체감하기에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조 위원장은 이날 "일본 수출 규제로 발생한 긴급한 상황에서 계열사와 거래, 소재·부품·장비 산업에서 거래는 부당한 내부 거래라고 제재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사업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 터지니 지금 당장만 허용해주고, 나중에는 다시 부당 내부 거래라고 꼬투리 잡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