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자동차 시장은 2500만대가 공급 과잉이다. 살아남으려면 변화해야 한다."

회색 면바지에 운동화 차림의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22일 양재동 현대차 사옥 대강당에 등장했다. 올해 처음 도입된 임직원 자유토론 행사 '타운홀 미팅'에서 직원들과 직접 대화하고 싶다며 자발적으로 나선 것이다. 평소 200~300명이 모이던 행사인데 이날은 1200여명이 몰려 바닥에 앉아 듣기까지 했다. 정 부회장이 직원들과 대규모로 토론 형식의 대화를 나눈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주제는 '함께 만들어가는 변화'였다.

22일 정의선(가운데)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서울 서초구 현대차그룹 본사 대강당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사내 자유 토론 행사)' 후 직원들의 사진 촬영 요청에 응하고 있다. 이날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살아남으려면 변화해야 한다"며 소형 항공기·로봇 등으로 진출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그동안 없어진 자동차 회사는 없었지만 앞으로는 사라지는 회사도 생길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중에서 살아남고 경쟁력을 갖추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그러려면 차만 잘 만들어선 안 되고, 서비스나 앞서가는 설루션을 내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부회장은 작년 9월 수석부회장 승진 후 현대차의 변화를 주도해왔다. BMW 출신 외국인 사장을 연구개발 수장으로 앉히는 등 외부 인재를 폭넓게 발굴하고, 정기 공채 폐지, 복장 자율화, 직급 단순화 등을 단행했다. 최근 세계 3위 자율주행 기술기업 '앱티브'와의 합작사에 2조4000억원을 투자하는 등 미래차 대비를 위한 외부 투자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그는 "지금의 변화는 빙산의 일각"이라며 "여러분의 능력을 200~300% 더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변화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대차의 변화가 늦었다는 반성도 했다. 그는 "창사 이래 변화는 계속 있었지만, 과거 5~10년은 정체가 됐다고 자평한다"며 "세계 트렌드가 바뀌고 있는데 좀 모자랐던 게 아닌가. 더 과감한 변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변화의 출발이 조직문화의 변화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정 부회장은 "사일로 효과(부서 이기주의)라고 하는데, 공무원 조직보다 우리가 더 이 문제가 심하단 얘기가 있어 저와 임원들이 솔선수범하겠다"며 "실무에선 창의적으로 일하는 데 에너지를 쓰고, 일을 정치적으로 하지 말라. 여기는 정치판이 아니고 회사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하는 방식에서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게 모든 걸 동원해볼 생각"이라며 "자동차 볼륨(판매량)으로 1000만대, 1100만대 해서 1등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사람들이 가장 오고 싶어 하는 1등 회사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그는 "우리 민족은 너무 훌륭한데, 이 훌륭한 점을 발휘 못 하게 하는 조직문화가 많다"며 "그걸 깨지 못하면 5등, 6등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보고문화와 관련해선 "이제 얼굴을 맞댔을 땐, (종이에) 쓸 수 없는 더 깊은 얘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메일 보내고 똑같은 내용을 파워포인트 첨부하는 건 안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때 직원들 사이에선 환호가 터져 나왔다.

올 초 시행한 복장 자율화에 대해선 "미국이 앞장서서 하고 있고, 우리가 거의 마지막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현대가 바뀌면 다른 데도 다 바뀌는 것이라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정 부회장은 이날 직원들로부터 질문만 받다가, 거꾸로 질문을 하나 던졌다. 청년 43인이 기성세대에게 쓴 글인 '그러니까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라는 책을 소개하며, "기성세대가 꼰대라는 소리를 안 들으려고 노력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저도 그렇다"며 "하지만 젊은 세대가 무분별하게 꼰대 문화를 비판한다는 지적도 있는데, 여러분도 책을 보고 느낀 점을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