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2.6%에서 2.0%로 하향 조정한 수정 전망을 발표한 이후 정부 고위층의 말이 달라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IMF의 수정 전망이 나온 직후인 17일 부랴부랴 경제장관회의를 열고 "지금 우리는 경제·민생에 힘을 모을 때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투자’라는 단어를 10번이나 반복해서 꺼냈다. 청와대가 ‘아니다’고 강조했지만, 이날 회의 후 시장에서는 ‘경기부양용 건설투자가 늘어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형성됐다.

‘지나친 낙관론’이라는 비판을 받고도 ‘2.4~2.5%’라는 성장률 목표치를 고집했던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해 성장률이)IMF와 OECD가 가장 최근에 내놓은 수준(2.0~2.1%)이 될 것"이라고 물러섰다.

지금껏 역대 정부는 정부 성장률 전망치 조정을 정책 기조 변화를 알리기 위한 예광탄으로 사용했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구원투수로 등판한 윤증현 전 기재부 장관이 2009년 성장률 전망치를 -1.9%로 하향 조정하고 위기대응 총력 체제를 선언한 게 좋은 본보기다. 당시 정부 불신의 근원이었던 3.0% 전망치를 위기 상황에 걸맞게 조정하자, 시장에서는 이런 환호성이 나왔다. "이제 정부 대책을 믿을 수 있게 됐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은 이런 환호성이 나오지 않을 것 같다. 문재인 정부 사람들은 악화된 세계경제 환경 탓에 한국 경제가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글로벌 경제가 꺾이고 있는 상황에서, 이 정도(2.0~2.1%) 성장은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선방 하는 것"(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이라고 외친다. 이 얘길 듣고 황당함을 느꼈다는 경제 전문가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렇다면 2.0% 성장을 진짜 선방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정도’ 수준은 한국은행이 연간 성장률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54년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 시절인 2009년(0.7%), 외환위기 시절인 1998년(-5.5%), ‘2차 오일쇼크’ 시절인 1980년(-1.7%), 1956년(0.7%) 등 4개 연도를 제외하고는 최저치다. 외부적인 경제충격이 없는 경우만 놓고 보면 가장 부진한 성적표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선방인지 의문이다. 정부 당국자들은 지난 4월 대비 성장률 전망치가 1.8%P(포인트), 2.4%P씩 하향 조정된 싱가포르(2.3→0.5%), 홍콩(2.7→0.3%)에 비해 한국의 조정폭(0.6%P)이 크지 않아 ‘선방’이라고 한다. 그러나 인구가 600만~700만명 수준으로 경제규모가 협소한 이들 나라와 인구 5000만명대 한국을 동일 잣대로 비교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다.

경제 당국자들이라면 한국과 비슷한 규모인 프랑스(1.3→1.2%), 스페인(2.1→2.2%) 경제가 구조개혁을 통해 세계경제 성장둔화 속에서도 당초 예상된 성장경로를 걷고 있다는 것을 참고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성적표는 2017년 3.2%, 2018년 2.7%, 올해 2.0% 안팎으로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이쯤 되면 ‘정부 정책으로 국민의 소득을 늘리면 경제가 성장한다’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그래야 경제주체들이 정부 정책을 믿고 투자를 늘릴 수 있다. 그저 "소주성이라는 용어를 두고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있겠느냐"(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면서 은근슬쩍 뒤로 물리려는 태도는 아무도 설득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2.0% 성장이면 선방이다’라는 생각을 뜯어 고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