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알파벳의 자회사로 자율주행차를 개발하고 있는 웨이모가 최근 고객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애리조나주 피닉스시 지역에서 시행하고 있는 자율주행 택시 호출 서비스 이용자 400명이 대상이었다. 웨이모는 이메일에서 "조만간 고객들이 완전 자율주행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웨이모는 작년 12월 피닉스시 일대에서 세계 최초로 자율주행 택시를 운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초 기대와는 달리 엔지니어가 운전석이 앉아 있었다. 직접 운전을 하지는 않지만 비상시에 대비해 탑승한 것이다. 이에 대해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1년 만에 운전자가 없는 차량을 투입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웨이모가 이달 초 로스앤젤레스에서 도로 지도 그리기 작업에 들어간 사실도 눈길을 끈다. 도로와 보도블록, 소방 급수전, 건널목 등 각종 시설과 장애물을 파악해 3차원(3D) 정보로 입력하고 있다. 피닉스보다 훨씬 복잡한 대도시 교통환경에서 자율주행차를 운행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다.

한국은 2024년까지 제도·인프라 구축을 완료하고, 2027년에 완전 자율주행차(레벨 4)를 주요 도로에서 상용화할 계획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15일 경기도 화성의 현대차 연구소에서 열린 ‘미래차 국가비전 선포식’에서 밝힌 목표다. 정부는 레벨4 자율주행 상용화가 세계 최초라고 했다.

레벨 4 자율주행차는 비상시에도 차량이 일정 시간 자체 대응할 수 있다. 그래서 운전자가 차량 운행에 거의 신경 쓰지 않고 책을 읽는 등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현재 미국에서 시범운행 중인 자율주행차보다 앞선 기술이다. 사실상 완전 자율주행 수준으로 평가된다. 어떤 도로 환경에서도 무인(無人) 자율주행이 가능한 ‘레벨 5’는 언제 실현될지 아직 기약이 없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미래자동차 산업 발전전략’은 곳곳에서 판타지 소설 같은 느낌을 준다. ‘완전 자율주행 제도 세계 최초 완비’ ‘완전 자율주행 세계 최초 상용화’ ‘미래차 경쟁력 세계 1등’ 같은 목표는 너무 거창해서 오히려 공허하게 들린다. 기연(奇緣)을 만나 하루 아침에 절세 고수가 된다는 이야기만큼이나 현실성이 떨어진다.

미국의 경우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주 등에서 테스트 중인 자율주행차가 수천대에 이른다고 한다. 웨이모 자율주행차의 누적 운행 거리는 1000만 마일(1610만㎞)을 넘는다. 지구를 400바퀴 돈 것과 비슷하다. 반면 국내에서 시범운행 중인 자율주행차는 80여대에 지나지 않는다. 기술 수준과 주행 기록 등 데이터 축적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업계에선 한국이 미국 등 자율주행 선진국보다 기술은 3~4년, 제도는 6~7년 뒤처져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현대차가 내년에 20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의 앱티브와 합작법인을 세우기로 하는 등 열심히 뛰고 있지만 기술 격차를 좁히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앱티브는 웨이모, GM 크루즈에 이어 자율주행 기술순위 세계 3위로 평가받고 있는 기업이다.

제도적 격차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정부는 2024년까지 차량통신 인프라, 3차원 도로 정밀지도, 통합 교통관제 시스템, 신호등과 안전표시 통일, 자율주행차 제작·운행 기준, 성능 검증 체계, 보험 제도 등 관련 인프라와 제도를 완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 규제완화 정책이 굼뱅이 걸음을 하고 있는 현실과 국회 입법 속도 등을 감안하면 전혀 믿음이 가지 않는다.

자율주행차가 탑승자와 보행자의 안전 중 어느 쪽을 우선시해야 하는 지를 비롯해 법적, 윤리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숱하게 남아 있다. 한국에서 자율주행차 시범 운행 도중 인명사고가 나면 미국보다 훨씬 큰 파장이 일 것이다. 일반 도로 주행을 허용한데 대한 책임 논란으로 여론이 들끓고, 관련 입법도 차질을 빚을 우려가 있다.

그런데도 정부가 현실과 동떨어진 목표를 들고 나온 이유가 뭘까. 최근 대통령의 경제행보가 부쩍 늘어난 것과 관련이 있다. 경제위기론을 의식해 대통령이 직접 경제 현안을 챙기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면서 각 부처가 경쟁적으로 미래 비전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내내 딴전을 피운 탓에 준비 부족으로 알맹이가 별로 없다.

그래서 기업의 투자 계획에 정부가 숟가락 얹고 생색을 내는 ‘쇼’를 벌이고 있다. 내실이 없으니 외양에 더 치중한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라는 이유로 기업에 좀더 화려하고 화끈한 목표를 요구한다. ‘세계 1등’ ‘세계 최초’의 수식어를 남발하며 마치 정부가 다 해낼 것처럼 허세를 부린다.

기업 입장에선 황당하지만 대놓고 반대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정부가 해달라는 대로 적당히 장단을 맞추면서 반대급부를 기대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가 제시한 목표는 무시해야 한다. 잘못되면 정부가 모른 척할 게 뻔한데 기업이 무리할 이유가 없다. 결국 정부 개입에 흔들리지 않고 기업이 자기 페이스를 지키는 게 중요하다. 판타지 소설로 미래차 경쟁력을 키울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