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주거 지원 정책의 대표적인 모델인 ‘10년 공공임대 아파트’가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 약속했던 공공임대 기간을 채운 단지가 쏟아지기 시작했는데, 그동안 집값이 너무 오른 탓에 분양 전환 가격이 비싸졌고, 입주민들이 이 값에는 분양전환을 하지 못하겠다고 반발하고 있어서다. 원칙을 고수하기도, 그렇다고 입주민 요구를 마냥 들어주기도 어려운 정부는 고민에 빠졌다.

21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그동안 공급한 ‘10년 공공임대아파트’의 임대계약이 올해 3800여가구를 시작으로 속속 만료될 예정이지만, 첫 타자인 경기도 성남 판교부터 암초를 만나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10년 임대 분양전환’은 시세보다 저렴한 임대조건으로 10년 동안 임대한 다음, 입주민들에게 우선분양권을 주는 제도로 지난 2003년 도입됐다. 이전에도 한국토지주택공사(LH)나 민간 건설사 등이 분양전환 조건으로 임대 아파트를 운영했지만, 임대기간이 최장 5년에 그쳐 너무 짧다는 지적을 받았다.

LH에 따르면, 올해 분양전환일을 맞는 주택은 성남 판교 5개 단지와 전남 무안·화성 동탄 각 1개 단지 등 모두 3815가구다. 현재 분양전환 문제로 가장 몸살을 앓는 곳은 성남 판교 일대다.

판교 원마을 12단지 428가구는 지난 7월부터, 산운마을 11·12단지 1014가구는 지난달부터 이미 분양전환일이 시작됐다. 나머지 단지들도 이달과 다음달에 걸쳐 임대계약이 끝난다.

입주민들은 공공택지에 조성한 주택인만큼,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해 분양전환가격을 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시세와 비슷하게 분양하면 그만큼 LH가 이익을 취하는 것이라고도 주장한다.

지난 2018년 8월 서울 청계광장에서 전국 LH 중소형 10년 공공임대연합회 회원들이 분양가 인하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모습.

하지만 LH는 난색을 표한다. 애초 계약에 ‘감정평가금액’으로 분양한다고 돼있는데다, 분양가격을 임의로 낮출 경우에는 배임 논란에 휩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달 초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변창흠 LH 사장도 LH가 분양가를 정할 권한이 없을 뿐더러, 관련 법이 개정되더라도 소급 적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다시 한번 밝혔다.

분양전환을 앞둔 10년 공공임대 아파트가 줄줄이 대기 중이라는 점도 부담이다. 첫 분양전환 단지들의 합의 내용에 따라 이후에 임대기간이 끝나는 단지들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는 2020~2022년 약 8400가구의 임대계약이 종료되고, 2023년 이후 분양전환할 가구도 7만4000여가구에 달한다.

결국 공은 정부로 넘어갔다. 갈등이 커지자 국토교통부는 올해 임대 계약이 끝나는 10년 공공임대 단지 거주민을 위한 대책을 내놨다. 전용면적 85㎡ 주택 입주자에게는 △분양전환 가격이 5억원을 넘는 주택은 초과한 액수를 최장 10년 동안 나눠서 납부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시중 주택담보대출보다 낮은 금리로 대출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겠는 내용이 포함됐다.

판교 거주민 등을 중심으로 반발이 계속되자 추가 대책도 내놨다. 매입 여부를 고민하도록 1년 동안 유예 기간을 주는 한편, 분양전환을 거부한 임차인은 최장 8년 동안 원계약과 같은 조건으로 거주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상당수 입주민은 여전히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정부의 고심이 깊어지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다만 최근 몇 년 새 서울과 주변 일부 신도시의 집값이 급등한 게 이번 사태의 주요 원인이라고 본다. 또 애매한 구석이 많아 선뜻 한쪽이 마냥 옳다고 말하기도 어렵다고 지적한다. 다만 복지정책을 별개로 놓고 부동산 전문가 입장에서만 볼 때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방향이 옳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는 "이번 분쟁의 쟁점은 공적인 성격이 있는 아파트인데도 분양가격이 시세보다 저렴하지 않다는 점"이라며 "판교의 경우 집값이 큰 폭으로 오르다보니 임차인들이 생각하는 가격과 LH의 분양전환 가격 사이에 괴리가 더 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분양전환가격의 기준인 감정평가액도 담보 감정가냐 실거래 감정가냐 법원경매 감정가냐에 따라서 차이가 난다"며 "감정평가 기준이 들쭉 날쭉하다는 비판 등에서도 완전히 자유롭기 어려운 문제"라고 지적했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팀장은 "심리적으로는 임차인들의 입장에도 공감하지만, 입주 당시에 분양전환 조건 등에 합의했기 때문에 임의로 바꾸면 형평성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면서 "지난 10년 동안 공공임대의 이점을 누리며 거주한 사실 등을 고려하면 LH 쪽 주장이 더 합리적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