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국경제설명회에서 "주 52시간 근무제, 최저임금 인상 등이 시장 기대보다 빠르게 진행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에 부담이 갈 정책은 세밀하고 촘촘하게 보완 작업을 해나가고 있다"며 주 52시간제 적용 대상이 내년에 종사자수 50~299인 중소기업으로 확대되는 데 대한 보완책을 내놓을 것임을 밝혔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이 16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국경제설명회에서 한 미국 증권사 고위 임원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미국 뉴욕 세인트레지스 호텔에서 글로벌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국경제설명회(IR)를 열고 직접 기조 발표를 한 뒤 글로벌 투자자들과 질의 응답 시간을 가졌다. 이날 설명회에는 미국 최대 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제임스 퀴글리 부회장, 세계 최대 채권 운용사 핌코(PIMCO)의 존 스터진스키 부회장, 쇼어드 히나트 JP모간 기업금융글로벌부문장, 조나단 그레이 블랙스톤 최고운영책임자(COO) , 마이클 쿠쉬마 모간스탠리 최고투자책임자(CIO), 허용학 홍콩 퍼스트브리지스트래티지 대표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질의응답 시간에는 친노동적인 노동 규제에 대한 정부 입장, 저물가 현상에 대한 시각, 수출 위축에 대한 대책 등 다양한 주제가 거론됐다. 홍 부총리는 "정부는 최저임금 대폭 인상, 주 52시간제 도입 등 노동친화적인 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쳐왔는데, 앞으로도 이러한 노동 정책을 더 도입할 것인가"라는 피터 마 포인트스테이트캐피털 전무(Managing Director)의 질문에 대해 "주 52시간 근무제, 최저임금 인상 등이 바람직한 정책이긴 하지만, 시장 기대보다 빠르게 진행된 측면이 있다"고 답했다. 그는 "2020년 최저임금 인상률을 2.87%로 정하고, 주 52시간제 도입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며 "시장에 부담이 갈 정책은 세밀하고 촘촘하게 보완 작업을 해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홍 부총리는 질의 응답 시간 이후 기자들과 만나 "주 52시간 근무제도가 내년 1월부터 299인 이하 기업에 적용되는 데 기업이 상당히 어렵다는 말을 듣고 있다"며 "어떠한 형태로든 보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몇 개월간 내부 협의를 해왔고 조만간 대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도입 원칙을 견지하되, 기업들이 적용할 때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는 게 홍 부총리의 설명이다.

그는 "최저임금의 경우 합리적인 결정을 위해 최저임금 결정 구조를 다시 재구조화하기로 했다"며 "(노동정책 쟁점들이) 그런 방식으로 시장과 소통하면서 합리적으로 결정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홍 부총리는 ILO(국제노동기구) 협약 비준과 관련해서는 "일부 기업에서 부담이 된다고 이야기하지만, OCE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 가운데 우리만 비준을 안 한 게 있어 EU(유럽연합) 등으로부터 압력을 받고 있다"며 "고용노동부가 수용 가능한 협약 비준 내용을 만들어 국회에 전달할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홍 부총리는 "내년에 올해 보다 9.3% 늘어나는 재정 지출과 관련해 투자와 소비 중 어느 쪽에 집중되는 것인가"를 묻는 질문에 "투자에 비중을 뒀다"고 답했다. 가계 대상 이전지출이나 정부 소비보다 공공 및 민간 투자에 대한 보조금 지급이 많다는 의미다. 홍 부총리는 "투자 쪽에 재원이 배분되면서 올해 대비 예산 증가율은 산업 분야 재정지원이 27%, 연구개발(R&D) 지원이 17%, SOC(사회간접자본) 투자가 13%에 달한다"고 말했다.

그는 "양극화, 분배문제를 해결하고 저소득층 소득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복지 분야 예산도 12% 증액했다"고 덧붙였다. "내년에는 예산을 조기 집행할 계획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홍 부총리는 "내년 초부터 조기집행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몇 분기째 이어지고 있는 수출 부진과 그 주요 원인인 반도체 업황 부진에 대한 대응책(counter-measure)이 있는가"라는 패트릭 도일 BOA메릴린치 주식영업본부장의 질문에 홍 부총리는 "반도체 수출 감소는 단가가 하락한 것이 주요 원인"이라며 "수출 물량은 큰 변화가 없다"고 했다. 홍 부총리는 "한국 정부는 2019년 들어와서 다섯 번 수출 촉진 대책을 마련했고, 미국·중국 외 수출 시장 다변화를 위한 각종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미중 무역갈등을 비롯한 국제 무역갈등이 조속히 해결되는 게 중요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저물가 현상에 대한 정부 입장을 묻는 토마스 번 미 컬럼비아대 교수(국제공공대학원·SIPA)의 질문에 홍 부총리는 "물가지수를 구성하는 품목 가운데 20~30%의 물가가 하락하고 있다"며 "특히 농산물 및 석유제품 가격이 내려간 게 9월 물가상승률이 -0.4%까지 떨어진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홍 부총리는 "농산물 및 석유류 가격을 제외한 근원물가상승률은 1% 정도고 기대인플레이션도 1.8~2.0%를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농산물 및 석유제품 가격 변동이 안정되면 올 연말 0% 중반대, 내년 1% 초반대로 물가상승률이 각각 회복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놨다. "한국 정부는 디플레이션 가능성에 대해서 경계하고 있지만, 디플레이션을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고 홍 부총리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