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말 오픈뱅킹 시범운영 예정…은행권 준비에 박차
'신한'은 쏠 개편, '우리'는 핀테크 협력, '국민'은 알뜰폰
고객 사로잡은 앱만 살아남는 적자생존 경쟁 펼쳐질듯

이달말 오픈뱅킹 시대가 열린다. 오픈뱅킹은 디지털 분야에서 은행 간 장벽을 없애는 것이 핵심이다. 지금은 A은행 계좌에서 돈을 이체하려면 A은행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해야 하고, B은행 계좌에서 돈을 이체하려면 B은행 앱을 또 깔아야 한다.

하지만 앞으로는 A은행 앱에서 B은행 계좌의 돈도 조회하고 이체하는 게 가능해진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은행 앱 하나로 다양한 핀테크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게 되고 연금자산을 조회하고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핀테크 앱으로 은행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 고객의 스마트폰에 여럿 깔려 있던 금융회사 앱이 단 하나만 남게 될 수 있는 것이다. 말그대로 무한경쟁 시대가 열리는 셈이다.

금융업계에서는 오픈뱅킹 시대가 열리면 고객 입장에서 더 편하고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금융회사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본다. 정희수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오픈뱅킹 시대에는 경쟁 패러다임의 변화를 촉진시켜서 은행의 고객 독점력이 사라지게 된다"며 "누가 더 이용 편의성과 간편성을 높여서 다수의 고객을 보유하고 높은 사용 빈도를 유도하느냐에 따라 성공 여부가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오픈뱅킹을 이용해 고객이 서로 다른 은행 계좌에서 돈을 옮기는 과정을 보여주는 그림.

◇앱 디자인부터 핵심 서비스까지 다 바꾼다

오픈뱅킹은 이달말 10개 시중은행에서 먼저 도입한 뒤 올해 안에 핀테크 전체로 확대될 예정이다. 이미 150여개에 달하는 금융회사가 오픈뱅킹 사전 이용 신청을 했다. 오픈뱅킹의 첫 테이프를 끊는 시중은행들은 기선제압을 위한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오픈뱅킹 시범운영에 맞춰 모바일 앱인 '쏠(SOL)'의 대대적인 개편을 준비하고 있다. 단순히 타행 계좌 조회·이체 기능을 추가하는데 그치지 않고 오픈뱅킹을 고객 편의성을 극대화하는 계기로 삼은 것이다. 쏠은 지난해 2월 신한S뱅크, 써니뱅크 등 6개로 흩어져있던 신한은행의 금융 앱을 하나로 모은 것으로 출시 1년 반만에 가입자가 1000만명을 넘어서는 등 신한은행을 대표하는 앱으로 자리잡았다.

우선 신한은행은 쏠의 'UX·UI(사용자 인터페이스·사용자 경험)' 디자인을 바꾸기로 했다. 지금 쏠 앱은 세로로 화면을 내리는 스크롤 방식으로 메뉴가 구성돼 있다. 온라인 쇼핑몰이 많이 사용하는 방식인데 앞으로는 가로로 화면을 넘기는 패널 방식으로 바뀔 예정이다. 1년 반 동안 고객 반응을 확인한 결과 화면을 내리는 스크롤 방식을 불편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고 판단한 것이다.

'마이자산'이라는 새로운 서비스도 추가된다. 신한은행이 전사적인 역량을 모은 것으로 개인 맞춤형 자산관리 서비스를 모든 쏠 이용자가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지금은 은행 자산관리 서비스는 소수의 고액자산가만 PB를 통해 이용할 수 있다. '마이자산' 서비스는 소비, 지출 관리뿐 아니라 개인의 상황에 맞는 자산관리 전략 추천, 금융투자상품 추천, 연금진단 등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신한은행은 '마이자산' 서비스를 강화해 토스나 뱅크샐러드 같은 핀테크 서비스와 직접 경쟁한다는 계획이다.

KEB하나은행이나 부산은행도 앱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준비 중이다. 부산은행은 디지털 채널을 담당하는 스마트영업부를 중심으로 상품개발, 마케팅 부서가 모두 참여한 오픈뱅킹 TFT를 구성했다. 모바일 앱에 특화된 금융상품을 만들어 추천하는 기능을 추가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핀테크 제휴 늘리고 비금융 서비스까지 동원

신한은행 쏠의 메인화면. 지금은 세로로 스크롤을 내리는 방식인데 앞으로는 가로로 패널을 넘기는 방식으로 바뀐다.

신한은행이 '쏠'을 강화해 뱅크샐러드나 토스 못지 않은 금융 앱으로 키우고 있다면, 우리은행은 반대로 핀테크와의 제휴를 늘리는 방향으로 오픈뱅킹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핀테크업체와 제휴를 맺고 '위비뱅크' 앱에서 제휴 핀테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지금은 10여개 핀테크 서비스가 '위비뱅크'에 들어와 있는데 우리은행은 이 숫자를 대폭 늘릴 계획이다. '위비뱅크'에 들어오기만 하면 모든 핀테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백화점식 전략이다. 현재 50~60개 핀테크 업체가 우리은행에 입점 신청을 한 상태다.

고객 편의를 강화하기 위한 방안도 마련하고 있다. 지금은 '위비뱅크' 앱에서 핀테크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해당 핀테크 업체의 앱으로 이동하는 방식이다. 우리은행에서는 링크만 제공하는 식인데, 고객의 휴대폰에 핀테크 앱이 깔려 있지 않으면 새로 깔아야 하는 등 불편함이 크다. 우리은행은 고객이 '위비뱅크' 앱 안에서 원하는 핀테크 서비스를 바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국민은행은 이달말 출시하는 5G 알뜰폰 서비스 '리브M(Liiv M)'을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리브M은 국민은행이 직접 만든 알뜰폰 브랜드다. 리브M 유심칩을 휴대폰에 삽입하면 이후 별다른 절차 없이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국민은행뿐 아니라 KB금융그룹 계열사 모두가 리브M 출시에 맞춰 관련 상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리브M에 대한 마케팅을 통해 오픈뱅킹으로 자유로워진 다른 은행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게 국민은행의 계획이다.

◇집토끼 놓칠라…은행들 수수료·금리 경쟁 치열할 듯

시중은행들은 오픈뱅킹 시범운영에 맞춰 대대적인 마케팅도 준비하고 있다. 일부 은행은 자신들의 오픈뱅킹 서비스를 알리기 위한 TV 광고도 준비 중이다. 다른 은행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연말까지 다양한 이벤트도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다른 은행에 있던 예금이나 적금을 옮겨오면 우대금리를 제공하거나 계좌이체 수수료를 무료로 해주는 등의 이벤트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기선제압을 위해 오픈뱅킹 서비스 출시 일정을 앞당기기 위한 움직임도 나온다. 금융당국이 공식적으로 정한 시범운영 시작일은 10월 30일이다. 하지만 우리은행이나 신한은행은 이보다 앞서 서비스를 출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 시중은행 디지털 담당 임원은 "오픈뱅킹은 은행 입장에서 양날의 검 같은 존재다. 다른 은행의 고객을 유치해 규모를 키울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고객을 빼앗기기 시작하면 생존을 걱정하게 될 수도 있다"며 "플랫폼으로서 은행 앱의 경쟁력을 누가 키우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