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 제재에 나선지 100여일이 지났습니다.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체들은 초기 공황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지만, 수입선 다변화·국산화에 성공하며 고비를 넘긴 모습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LG디스플레이·삼성디스플레이 등 패널 업체들은 국산 불화수소 시험을 끝내고 생산설비에 투입하고 있습니다. 한·일간 ‘무역전쟁’이 우리측 승리로 끝난 게 아니냐는 낙관적인 반응도 나옵니다.

시간을 돌려보겠습니다. 지난 7월 일본이 수출 제재 소식을 알릴 당시 업계는 ‘고순도 소재 확보’를 걱정했습니다. 일본이 기술력을 발판으로 독점하고 있는 초고순도 소재가 문제였습니다.

현재 한국 기업들이 국산화에 성공한 소재는 ‘액화 불화수소’입니다. 액화 불화수소는 일본은 물론 한국과 중국에서도 생산해오던 소재입니다. 당장 액체·기체를 가리지 않은 불화수소의 일본 수입 비중은 올해 들어 5월까지 43.9%에 불과했고, 중국이 46.3%를 차지했습니다. 중국산 저순도 액화 불화수소가 다량 수입돼 왔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불화수소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 각 단계에서 여러 등급의 순도로 쓰입니다. 디스플레이 패널 생산에는 초고순도의 ‘기체 불화수소’가 쓰이지 않습니다. 덕분에 국산화가 수월했다는 평가가 따릅니다.

디스플레이보다 정밀한 반도체 생산 과정에선 기체 불화수소가 필수입니다. 이 공정에는 여전히 일본산 초고순도 기체 불화수소가 쓰입니다. 기체 불화수소는 아직 국내 생산이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제조에 필수인 섀도마스크(Shadow Mask·화소형성 소재)도 마찬가지입니다. 파인메탈 마스크(Fine-metal Mask)로도 불리는 섀도마스크 시장은 일본 DNP(다이니폰프린팅), TOPPAN Printing(토판프린핑) 두 회사가 양분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EUV(극자외선) 공정에 쓰이는 포토레지스트(감광액·PR)또한 국산화는 지난합니다.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반도체 생산 라인 내 클린룸 전경.

지난 100여일간 한국이 대체해온 소재는 일본과 무역분쟁이 시작할 때 문제시됐던 ‘고순도’가 아닌, ‘저순도’에 가깝습니다. 일본 수출 제재 이후 소재 국산화·다변화를 위해 노력해온 국내 기업을 폄하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소재 국산화가 아직은 갈 길이 먼 현실임은 인정해야합니다.

지난 15일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은 "세계 최고의 반도체를 만들려면 최고의 소재가 있어야 한다"며 "무조건 일본제품을 줄이기보다 다변화 차원에서 국산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현실적으로 일본 제품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완전 국산화’는 힘들다는 뜻입니다. 이는 반도체 업계가 공유하는 인식이기도 합니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완전한 ‘극일’을 위해선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직 축배를 들긴 이릅니다. 진정한 승리를 위해, 약점을 돌아보고 먼 길을 떠나는 심정으로 치밀한 전략하에 한발 한발 앞으로 나가야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