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코넌 도일의 추리 소설 '은퇴한 물감 제조업자'에 등장하는 미술용 물감 제조업체 공동 창업자 앰벌리는 60세에 은퇴한 후 한가하게 여생을 보내려는 기대에 부풀어 있는 사람이었다. 가진 재산이 많아 여유가 있었으며, 무엇보다 스무 살 어린 미모의 아내와는 뒤늦은 신혼을 만끽하던 중이었다. 그러던 앰벌리가 은퇴한 지 2년여 만에 홈스의 사무실을 찾았다. 자신이 평생 모은 유가증권을 훔쳐 애인과 함께 달아난 아내를 찾아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아내의 애인은 앰벌리의 유일한 체스 친구이자 이웃인 젊은 의사였다. 하지만 홈스는 범죄 현장을 지우려는 듯한 집안 곳곳의 페인트칠에서 추리를 시작하고, 이 사건이 아내를 근거 없이 의심하고 재산을 빼앗길까 우려한 앰벌리의 잔인한 자작극임을 밝혀냈다.

◇억 소리 나는 노후자금

'은퇴'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 설레는 마음과 유쾌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풍요로운 노후 생활이 준비됐다고 확신할 수 없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은퇴란 불안감과 두려움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은퇴한 물감 제조업자라는 책 제목이 밝고 긍정적인 뉘앙스를 풍기기보다는 왠지 모를 사연과 서사가 느껴지는 것도 셜록 홈스가 주인공이라는 사실 외에 은퇴라는 단어가 안겨주는 무게감 때문일 수 있다. 은퇴 이후 소중한 노후자산이 위협받고 가족을 포함한 인간관계가 왜곡되는 일은 가장 피하고 싶은 상황이기도 하다.

독일 국채금리 연계 파생상품(DLF)에 투자했다가 수십 년 꼬박 모은 자금이 반 토막 났다던가, 퇴직금을 전부 날려버릴 위기에 처했다던가 하는 은퇴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연일 전해지고 있다. DLF 투자자들은 예금 이자보다 고작 1~2%포인트 더 받으려고 했을 뿐이다. 돈은 모으기도 매우 어렵지만, 저금리·고위험 시대에는 관리하는 게 더 어려울 수 있다.

구체적인 은퇴 준비를 위해서는 필요 자금을 세부적으로 계산해보는 게 첫 번째 할 일이다. KEB하나은행 자료를 보면, 60세 이상 가구에 필요한 노후자금은 억 소리가 나올 만큼 만만치 않다. 가구주가 60세 이상인 도시 가구의 월평균 지출액은 256만원. 이 돈을 만들기 위해 물가상승률(2010~2018년 평균 1.9%)과 은퇴자금 수익률(2017년 말 기준 직전 9년간 퇴직연금 장기수익률 연 3.53%)을 놓고 계산해보면 60세 남성의 은퇴 필요 자금은 5억9000만원, 60세 여성은 6억7000만원에 달한다. 100세까지 산다면 9억원이 필요하다. 물론 각종 비용과 세금은 고려하지 않은 숫자다.

◇저금리 시대엔 최저보증이율에 주목

은퇴 목표 자금이 정해졌다면 잘 모으고 잘 굴려야 한다. 금융자산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서는 투자 기간을 늘리고 수익률을 높여 복리 효과를 충분히 누릴 필요가 있는데, 문제는 금리가 떨어지면 복리도 별다른 효과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1억원을 30년간 예치한다고 가정할 때, 연 10% 복리가 적용되면 만기 원리금은 17억4490만원, 단리는 4억원으로 13억원 넘는 놀라운 차이가 발생한다(이하 연 복리 적용, 각종 거래비용·세금은 고려하지 않음). 그런데 금리가 1%로 낮아지면 1억원을 30년간 복리로 열심히 불려봐야 1억3480만원이 되고 단리는 1억3000만원이어서 그 차이가 480만원에 그친다. 초저금리 상황에서는 '복리의 마술'도 별 볼일 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현재 유럽의 예금 금리는 -0.5%이고 일본은 마이너스로 떨어진 지 오래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자가 붙는 것만으로도 안도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이자자산의 금리 변동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고정금리를 확보하면 된다. 향후 금리가 계속해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면 고정금리가 유리할 수 있다. 1980~1990년대 고성장 고금리 시대를 구가했던 우리 경제는 2000년대 들어 저성장·저금리 시대로 접어들었다. 자산을 운용할 때 고정금리가 적용되면 미래 특정 시점의 원리금을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어 계획적인 자산 관리가 가능하다.

다만 저금리 기조라고 해도 금리가 일직선상으로 내리는 것은 아니다. 금리도 경기순환 주기에 따라 등락을 반복한다. 고정금리는 금리 하락기에는 유리하지만, 금리 상승기에는 불리해진다. 공시이율은 시중금리에 연동해 금리가 오를 때 동반 상승한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시중금리가 하락할 때에도 같이 떨어지지만, 최저보증이율이라는 안전장치를 마련할 경우 금리 변동에 따른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장기 금융자산인 보장성 보험과 저축성 보험은 고정금리 혹은 최저보증이율을 제공한다.

◇균형적인 인간관계도 중요

노후에 관리해야 할 것은 돈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은퇴 이후 부부가 취미생활을 공유하며 사이좋게 지내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홈스를 찾아간 은퇴한 물감 제조업자처럼 배우자만 바라보고 사는 삶은 심각한 갈등을 불러오기도 한다. 유일무이한 친구를 두고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도 피로하긴 마찬가지. 균형적인 인간관계가 풍요로운 노후 생활을 더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