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사업청이 5조4000억원의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국군 전술정보통신체계(TICN) 사업을 진행하면서 발전기 공급업체 선정을 직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감사원의 컨설팅 의견을 무시하고 한화시스템 등 민간업체에 맡긴 것으로 드러났다. 한화시스템은 과거 납품비리 문제를 일으킨 전력이 있는 S전기를 발전기 공급업체로 최종 선정, 방사청의 관리부실 책임 논란이 커지고 있다.

TICN 사업은 무전기를 통해 정보를 주고받는 군 통신망을 대용량 정보 유통이 가능한 디지털 방식의 통신망으로 교체하는 사업으로, 정부가 10년간 총 5조4000억원을 투입했다.

지난 7일 경기도 과천시 방위사업청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왕정홍 방위사업청장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1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올해 방사청은 감사원에 사전컨설팅을 의뢰해 TICN 3차 양산 사업에서 발전기 공급업체 선정을 방사청이 직접 진행하는 '관급'으로 하는 것이 좋을 지, 체계업체 등에 하청을 맡기는 '도급' 형태로 하는 것이 좋을 지에 대한 컨설팅을 의뢰했다.

감사원은 "방사청이 직접 발전기 공급업체를 선정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컨설팅 의견을 전달했다. 방사청이 발전기 공급업체와 직접 계약을 맺지 않고 중간 업체가 껴 계약을 맺을 경우 공급업체가 방사청의 직접적인 제재망에서 벗어난 사례가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지난달 말 TICN 3차 양산 사업을 위한 발전기 공급업체 선정을 한화시스템 등 체계업체가 진행했고, 최종 공급업체로 납품비리 전력이 있는 S전기가 선정되면서 감사원의 의견을 무시한 방사청의 관리감독 허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방사청은 발전기 공급업체 선정을 관급형태로 진행하는게 바람직하다는 감사원의 사전컨설팅 내용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를 체계통합업체인 한화시스템 등에 맡긴 것이다.

S전기는 2012년 군 통신체계에 필요한 발전기 개발에 참여해 발전기에 장착될 외국산 디젤엔진을 수입하는 과정에서 200만원대인 디젤엔진 수입 원가를 400만원대로 2배 이상 부풀려 21억원에 달하는 차액을 부당이득으로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이 혐의로 S전기 C부사장이 올해 초 구속됐고, S전기는 올해 2월 방산물자 지정 취소 처분을 받았다.

S전기는 방사청과 직접 계약한 체계업체가 아니기 때문에 부정당업자 제재로 국가와 공공기관 등에 대한 입찰 참가 제한을 받지 않았다. 방사청은 직접 계약한 업체가 비리를 저질렀을 경우에만 부정당업자로 제재가 가능하다.

한화시스템은 S전기가 납품원가를 부풀린 것은 이 회사 C 전 부사장의 개인 비리일 뿐 회사는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S전기가 선정된 것을 놓고 납품비리를 저질러도 곧바로 사업에 다시 참여할 수 있다는 전례를 남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감사원의 컨설팅 의견이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납품비리 전력이 있는 업체가 선정될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방사청이 공급업체 선정을 민간업체에 맡긴 것은 명백한 관리부실"이라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디젤 발전기는 기술적으로 S전기만 생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납품비리로 방산물자 지정 취소를 받은 업체가 1년도 지나지 않아 곧바로 같은 사업 입찰에 참여해 선정됐다"며 "방사청이 한화시스템이 해당 업체와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했다.

감사원 사무총장 출신인 왕정홍 방사청장은 지난해 8월 취임했다. 감사원 출신이 방사청장에 임명된 첫 사례다. 국방‧방산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지속되는 방산비리 척결을 위해 임명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왕정홍 방사청장이 임명된 이후로도 군 무기 품질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방사청이 추진하고 있는 차세대 군용 다기능 무전기 TMMR(Tactical Multi-band Multi-role Radio) 사업에 문제가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TMMR 무전기에 장착될 배터리가 영하 20도까지만 견딜 수 있게 제작돼 영하 32도에 달하는 혹한 상황에서 먹통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