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엔 KDI서 "저물가, 수요위축에 공급요인 더해진 결과"
"기대인플레이션 하락 고착화 막아야…수요진작 정책 필요"

국회예산정책처가 저물가 현상은 공급측 충격과 수요 부진이 함께 작용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정부가 지난해 폭염으로 농산물 가격이 폭등했던 기저효과와 정부의 복지정책 등 공급측 요인을 '마이너스 물가'의 주범으로 지목하는 것과는 다른 시각이다. 지난달에는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저물가의 원인을 '수요 위축에 공급 기저효과가 더해진 결과'라고 진단한 바 있다. 국회예정처는 경제주체들의 물가전망이 계속 낮아질 경우에는 디플레이션 발생 가능성이 높아질 수도 있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국회예정처는 15일 발간한 '국내 소비자물가의 특징과 디플레이션 우려에 대한 분석' 보고서에서 "올해의 저물가 상황은 주로 공급측면에서 비롯된 일시적인 충격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수요측 물가상승 압력이 낮아지고 있는 상황은 우려스러운 측면이 있다"고 했다.

9월 소비자물가상승률(전년대비)이 -0.4%로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나타낸 데 대해서는 국회예정처도 일시적인 공급측 충격으로 설명했다. 지난해 여름 폭염에 따른 농산물 가격 상승의 기저효과, 석유류 가격 하락세 지속, 고교 무상교육 실시에 따른 공공서비스물가 하락폭 확대 등이 물가를 끌어내렸다는 것이다. 이는 기획재정부, 한국은행의 배경 설명과 동일하다.

하지만 국회예정처는 수요측 물가압력이 줄어 저물가가 유발되는 상황에 대해서도 주목했다. 특히 근원물가의 상승률이 둔화된다는 점에서 저물가 장기화를 우려했다. 식료품 및 에너지 등 변동성이 높은 항목을 제외한 근원물가는 흔히 수요측 물가상승 압력을 볼 때 사용하는 지표로, 현재 상당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9월 우리나라의 근원물가 상승률은 0.5%로 OECD 국가 중 이보다 낮거나 비슷한 수준을 나타낸 국가는 이태리, 포르투갈, 그리스, 프랑스 정도였다. OECD 가입국의 평균 근원물가 상승률은 8월 기준 2.3%, 주요 7개국(G7)은 1.8%이다.

오현희 국회예정처 경제분석국 분석관은 "우리나라는 2016년부터 수요측 물가상승 압력이 낮아지는 가운데 서비스가격 오름세 둔화등으로 (근원물가) 상승률이 낮아지는 모습"이라며 "OECD 주요지역들에 비해 낮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고 했다.

GDP갭이 낮아지는 것 또한 수요발(發) 저물가 장기화를 유발할 수 있는 요인으로 언급됐다. GDP갭은 잠재GDP와 실질GDP의 차이인데, 실제 성장세가 잠재 GDP만큼도 성장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즉 경기침체로 수요가 줄어 물가상승률 하락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국회예정처는 올해 들어 GDP갭이 마이너스를 보인데 이어, 2020~2023년 중에도 마이너스 수준에 머물 것으로 추정했다.

국회예정처 보고서는 지난달 KDI가 소비자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를 나타낸 배경으로 '수요 위축에 공급 기저효과가 더해진 결과'라고 본 것과 유사한 시각이다. KDI는 소매 판매와 소비자심리지수 하락, 수출 부진 등을 수요 부진의 근거로 제시했다. 당시 KDI의 분석이 나오자 일부에서는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해 수요 위축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GDP에서 정부소비 증가율이 민간소비보다 3배 정도 높아 소비를 떠받치고 있고, 월별 소매판매에서도 자동차, 통신기기·가전 등 내구재 판매는 증가세가 미미하다"며 "현재 저물가는 수요측 요인이 분명히 있다"고 했다.

국회예정처는 최근의 기대인플레이션 하락이 고착화될 경우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저물가 현상이 지속되면서 경제주체들의 물가상승에 대한 전망, 즉 기대 인플레이션이 지난 9월 1.8%로 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로 떨어졌다.

기대인플레이션이 1%대로 내려온 것 역시 이번이 처음으로, 이같은 현상이 지속될 경우 수요부진과 저물가가 맞물리는 악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 경제주체들이 물가하락을 예상해 가계는 소비를 미루고, 기업은 투자·생산을 축소하게 된다. 이는 고용감소, 임금하락을 통해 다시 물가 하락을 유발하게 된다. 국회예정처는 내년에 공급측 충격이 사라져도 낮은 수요측 압력으로 저물가 상황이 이어질 수 있지만, 이로 인한 디플레이션 발생 가능성은 낮게 봤다.

오현희 분석관은 "정책당국은 수요측 물가상승 압력이 낮아지는 가운데 기대인플레이션 하락으로 저물가·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소비와 투자 등 내수위축을 조기에 차단하는 수요진작책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