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 논란이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자 양대 ESS 배터리 생산업체인 삼성SDI와 LG화학이 고강도 대응책을 들고나왔다. 하지만 지난 6월 민관 합동 조사에서 명확한 화재 원인을 밝히지 못한 데다 추가 화재까지 발생한 상황이어서 민간 기업이 내놓은 대책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지 미지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ESS는 날씨에 따라 발전량 차이가 큰 태양광·풍력발전에서 생산한 전기 혹은 값싼 심야 전기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쓸 수 있도록 하는 장치로 재생에너지 발전을 위한 필수 설비다. 정부가 탈(脫)원전과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2016년 274개였던 ESS 설비는 지난해 1490개로 늘었다.

전문가들은 ESS 화재 논란을 진화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원인 규명과 대책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업계 한 전문가는 "정부가 재생에너지 중심의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ESS 사업장의 운영·관리가 미흡한 측면이 있다"며 "ESS 관련 제도가 정착된 미국, 유럽, 일본 등은 안전시공부터 설비 과정, 시공 후 감리까지 하는 등 관리감독이 철저하다"고 설명했다.

지난 8월 충남 예산군 광시면 미곡리에 있는 에너지저장장치(ESS)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다.

◇삼성SDI, 2000억원 투입…LG화학, 안전장치 도입

14일 산업통상자원부 자료를 보면 최근 3년간 발생한 ESS 화재 25건의 총 피해액은 382억원에 달했다. ESS 화재 25건 중 LG화학(051910)삼성SDI(006400)가 관련된 사고는 22건(88%)이다. LG화학 제품은 전체 25건 중 13건(52%)이 화재와 관련됐다. 피해 규모는 삼성SDI 제품이 225억원(59%)으로 가장 많았고, LG화학 제품이 124억원(33%)이었다.

삼성SDI는 이날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안전성 대책을 발표했다. 자사 ESS 제품에 안전장치를 이달까지 설치하고 대형 화재로 번질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최대 2000억원 규모의 자체 예산을 투입해 특수 소화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허은기 삼성SDI 전무는 "삼성SDI는 배터리 공급 업체이지만 전력변환장치, 시공·설치·운영 과정 등 문제가 발생해도 배터리에서는 화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종합 대책을 세웠다"며 "삼성SDI는 ESS 대책 관련 전담팀을 구성, 가용한 모든 자원을 투입해 최단기간 내 조치를 완료할 계획이다"라고 설명했다.

LG화학도 같은 날 안전장치 도입, 화재 발생 이후 확산을 방지하는 제품 출시 등의 대책을 내놨다. LG화학 관계자는 "올해 말까지 정확한 원인 규명을 위해 가혹한 환경에서의 시험까지 포함해 정밀 실험과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며 "이 결과에 따라 필요한 책임 있는 조치를 할 계획이며 만약 명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더라도 교체를 포함한 보다 적극적인 대응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삼성SDI ESS 시설.

◇"발화 원인 규명도 제대로 안 돼"…대응에 한계

삼성SDI와 LG화학이 잇따라 안전대책을 내놓은 것은 차세대 먹거리인 ESS 산업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명확한 화재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6월 민관합동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위원회는 전기적 충격에 대한 배터리 보호 시스템 및 운영환경 관리 미흡, 설치 부주의, ESS 통합제어 및 보호 체계 부족 등 복합적인 원인을 지목했지만 명확한 사고 원인을 밝히지 못했다. 조사위원회 발표 이후에도 3건의 추가 화재가 발생했다.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ESS 화재 이슈는 뜨거운 감자였다. 무소속 이용주 의원은 "ESS 화재 사고 관련 조사 회의록을 보면 부실하기 짝이 없다"며 "발화 원인도 미상으로 나와 있는데 원인을 몰라 대책도 못 세우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유한국당 이철규 의원은 "정부가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흠결이 가는 것을 우려해 ESS 배터리에 대한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며 "화재 책임도 규명되지 않았는데 대기업에서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을 해주는 사례도 있다"고 주장했다.

배터리 자체에 결함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제기됐지만 LG화학 측은 "배터리에 문제가 있다면 당연히 리콜해야 하지만, 지금까지 불이 난 14건 중 원인이 명확한 곳은 한 곳도 없다"며 "같은 배터리를 사용하는 해외 사업장은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