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 디지털 편집국 문화전문기자

병든 도시의 비정한 킬러 광대 이야기 ‘조커’를 보았다. 7개의 알약을 삼키며 가까스로 분열된 자아를 통제하며 살아가는 아픈 남자 아서 플렉. 호아킨 피닉스는 엄마와 단둘이 살며 코미디언을 꿈꾸던 평범한 남자 아서부터 발작적으로 웃어대는 병적인 환자, 증오의 희열로 온몸이 들끓는 차가운 조커까지, 그 변화를 가히 신들린 모습으로 소화해낸다.

어느 날 아서는 피에로 복장을 한 채 전철역에서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르고, 그 사건은 신경쇠약 직전의 고담 시민들의 분노에 방아쇠를 당긴다. 실업과 빈부격차, 복지 예산 삭감 등으로 이미 고담시는 폭동이 일어나기 일보 직전. 시민들은 부자를 죽인 미지의 광대를 영웅으로 추앙하고, ‘나도 광대다'라는 푯말을 든 채 거리로 물밀 듯이 쏟아져나온다. 공감력 없는 무례한 정치인, 오직 시청률을 위해 아서를 재물 삼아 조롱하던 TV쇼, 흥분한 군중이 맞물려 도시는 이성을 잃고 역병이 창궐한 것처럼 점점 미쳐간다.

질병의 도시를 지켜보자니 문득 이성복의 시 ‘그날'이 떠올랐다.

‘모두 병들었으나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극장 밖도 극장 안과 다르지 않아 거리는 정신분열에 걸릴 것처럼 몸살을 앓는데, 사람들은 화를 내면서도 정작 통증은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모든 싸움이 ‘선과 악’의 진검승부가 아니라 ‘위선과 위악’의 대리전으로 느껴져서? 절대 선과 절대 악이 없는 ‘페이크 정치'에서 팩트조차 채굴된 원석이 아니라 주장과 이미지의 짜깁기가 돼버려서? 어딘가 부조리해 보이는 이 싸움에 조커의 비장한 농담이 오버랩된다.

"내 인생이 비극인 줄 알았는데, 코미디였어."

개봉 9일째 3백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조커'의 한장면. 아서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지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터져나오는 발작적 웃음은 상대에게 불편함을 안긴다. ‘조커'는 웃음이 불러온 비극이다.

‘조커’는 반영웅인 조커의 탄생에 합리적이고 말이 되는 이유를 찾으려는 영화다. 설명되지 않은 존재, 설명될 수 없는 캐릭터,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설명하고자 애쓰는 종류의 영화,라고 평론가 송경원은 설명했다. 고담시가 그를 괴물로 키웠는지, 그가 고담시를 미치게 했는지는 분별하기 어렵다. 다만 이 장면은 너무나 선명해서 설명이 필요 없다.

"당신은 내 말을 귀담아듣지 않아요!" 화를 내는 아서에게 심리상담사가 심드렁하게 토해낸 말. "아무도 당신 같은 사람에게 관심 없어요."

담당 심리치료사에게까지 무시당할 정도로 평생 존재감 없이 살던 아서는 "나도 광대다"라는 대중의 가짜 공감, 열광적인 오해에 기꺼이 몸을 던진다. 붉은 슈트로 멋지게 차려입은 마른 남자는 빈부를 상징하는 높은 계단 위에서 느닷없이 아름답고 기괴한 착란의 춤을 춘다.

‘하하하하하하하' 하이톤으로 웃음이 터지면 제어하지 못해 기진맥진하던 병적인 남자가, 정작 시원하게 한 번이라도 남을 웃겨본 적 없는 코미디언 지망생이, ‘웃음을 일기로 배운' 소심한 사내가, 불타는 도시의 광장에서 핏물로 제 입이 터지도록 스마일을 그린다. 조커(joker)가 되어간다.

언제부턴가 현실 세상도 무협지처럼 어지럽다. 난세는 영웅을 원하고 반영웅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조커’는 슈퍼히어로에 반하는 매력적인 슈퍼빌런의 탄생기를 그렸지만, 시나리오의 원래 제목은 ‘Joker;An Origin’이었다. ‘The Origin’이 아니라 ‘An Origin’. 이 이야기는 반영웅이 탄생하는 여러 서사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 "연민과 공감의 결여, 예의 없는 사회, 그 환경이 조커를 만들었다"는 감독 토드 필립스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당신은 내 말을 귀담아듣지 않아요!" "아무도 당신 같은 사람에게 관심 없어요." 말해도 듣지 않으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존재를 표현하기 위해 광장으로 나온다. ‘조커’는 ‘무례한 사람들에게 웃으며 화내는 법’의 극단을 보여주었다. ‘그를 나르시시스트라고 상상했다'는 호아킨 피닉스의 말은 이 강렬한 부조리극을 관통하는 실핀이다.

기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처음 말했던 사람은 조커가 아닌 무성영화 시대의 히어로 찰리 채플린이었다. 어쩌면 희비극의 앵글은 인생이 아니라 정치, 미디어, 거리… 지금 끓고 있는 거의 모든 것에 해당하는 것처럼 보인다. 미세먼지가 짙어지는 계절이 왔다. 극장 밖을 나서니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