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잡지 편집장 출신으로 2년 임기 시작
"다양한 문화 융합한 K스타일, 샤넬·디올 못지 않아"

매년 이맘때면 서울 동대문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일대는 옷 좀 입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일 년에 두 번(3·10월) 열리는 서울패션위크 때문이다. 오는 14일 개최되는 2020 봄·여름 서울패션위크는 정구호 감독에 이어 2대 감독으로 선출된 전미경(사진) 총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전 감독은 패션 잡지 바자코리아 편집장 출신으로 현재 인플루언서(소셜미디어 유명인) 기획사 스피커 대표와 삼성물산 패션부문 마케팅 고문을 역임하고 있다. 패션 디자이너를 발굴하는 리얼리티 방송인 ‘프로젝트 런웨이’의 심사위원으로도 낯익은 인물이다. 그는 앞으로 2년간 서울패션위크를 이끌 예정이다.

서울패션위크 개최를 일주일 앞둔 8일, 전 감독을 DDP에서 만났다. 그는 "25년간 패션 선진국을 드나들며 언젠가는 국내 디자이너를 해외에 소개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한국의 디자이너들을 세계에 알리고 그들의 성장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전 감독이 꺼내든 카드는 디지털 콘텐츠 전략이다. 한국의 패션이 우수한 역량을 지닌 데 반해, 이를 알리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한국 디자이너의 옷을 처음 접한 외신 기자들이 ‘너희 나라에 이런 디자이너가 있었어?’라며 극찬하는 걸 보고 우리 디자이너를 포장하고 홍보하는 역량이 취약했음을 실감했다"며 "해외 유력 매체와 소셜미디어(SNS) 등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해 국내 디자이너를 세계에 알리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미국 패션 비즈니스 매체인 WWD(Women’s Wear Daily)와 손잡았다. WWD는 1910년 창간한 패션 전문지로, 앞서 상해패션위크와도 협업해 중국 패션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이번 서울패션위크의 소식도 WWD에 실시간으로 게재될 예정이다. 전 감독은 "방탄소년단(BTS)이 디지털 콘텐츠를 발판 삼아 세계적인 스타가 됐듯, 서울패션위크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노출해 일년 내내 세계인이 한국 패션에 주목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지난 3월 열린 2019 가을·겨울 서울패션위크 패션쇼 전경.

2000년 서울컬렉션으로 시작한 서울패션위크는 회를 거듭할수록 규모가 축소되는 모양새다. 참여 디자이너가 줄어든 데다, 지난 시즌부터는 메인 후원사를 구하지 못해 재정도 넉넉하지 않다.

이는 비단 서울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적으로 패션위크의 집중도는 떨어지고 있다. 과거엔 패션쇼가 브랜드 홍보와 계약 수주를 위한 유일한 채널이었지만,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다양한 통로로 홍보와 유통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전 감독은 "패션위크가 위축된 것이 아니라 소통 채널이 다양해진 것"이라며 "서울패션위크는 메인 스폰서의 행사가 아니라 참여 디자이너가 세계로 나갈 수 있도록 후원하는 행사다. 매년 계약 실적도 10%씩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샤넬과 프라다 등 유명 브랜드의 패션쇼가 열릴 때면 해당 도시는 전 세계 패션 관계자들과 소비자들의 이목이 쏠린다. 패션쇼가 국가의 패션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지지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전 감독은 "한국은 샤넬·디올 같은 브랜드는 없지만, 다양한 콘텐츠를 융합해 룩앤필(look&feel·보여지는 것)을 만들어 내는 압도적인 힘이 있다"고 했다. 이어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배우 전지현이 입었던 옷과 화장품이 전 세계 매장에서 매진됐을 때 한국을 무시했던 명품들의 태도가 돌변했다. 이것이 우리 문화가 가진 저력"이라며 "패션을 비롯해 뷰티, 음악, 드라마 등 다양한 문화를 융합해 ‘K-스타일’을 만든다면 세계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서울패션위크 패션쇼는 일반인도 볼 수 있도록 전체 좌석의 5%를 판매했다. 이전까지는 바이어와 유명인 등 디자이너의 초대를 받은 사람만 관람할 수 있었다. 지난 7일 판매를 시작한 패션쇼 티켓은 하루 만에 전 좌석이 매진됐다. 전 감독은 "더 많은 대중들이 패션쇼를 접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겠다"며 "서울패션위크가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축제가 되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