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수익의 최대 절반가량을 담당해왔던 부동산 시장이 삐걱대고 있다. 부동산금융은 대부분 투자은행(IB) 수수료 수익으로 집계되는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매해 늘어나던 IB 수수료 수익이 내년에는 감소 전환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9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하이투자증권은 3분기 주요 증권사 5곳(미래 삼성 NH 한투 키움)의 IB 및 기타손익이 3203억원으로 전기대비 7.4%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강승건 애널리스트는 "부동산 딜(deal·거래)이 많이 감소해 IB 수익이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태준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올해 상반기까지는 원화 약세로 해외 부동산 딜에 대한 수수료 수익이 '서프라이즈' 수준이었다"면서 "해외 부동산 투자 매력이 줄어들고 있어 내년에는 이것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철거 중인 서울 한 재건축 단지

◇증권사들, 해외빌딩 재판매…국내외 부동산 하락 전환 조짐

최근 증권업계는 국내외 부동산 신규 거래는 진행하지 않고, 기존 계약을 관리하는 상황으로 돌아섰다. 해외 오피스 빌딩 신규 매수는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이미 인수한 부동산을 재판매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국내 부동산과 관련해서도 24조원에 달하는 우발채무를 줄이는 분위기다.

그동안 증권가의 오피스 빌딩 인수전이 과열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곳은 프랑스 파리다. 국내 증권사 7곳은 파리의 오피스 빌딩 7개를 동시에 매각하려고 해 업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미래에셋대우가 1조1000억원을 들여 인수한 마중가 타워는 7월 초 거래계약 종결 이후 3개월 안에 재판매할 계획이었으나 지연되고 있다.

이에 대해 미래에셋 측은 상당수 투자자를 확보한 상태이고 해외에서 추가 투자자를 모집 중이라 조만간 종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나머지 오피스 빌딩은 마중가 타워 이슈 때문에 재판매에 난항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증권사는 해외 오피스 빌딩을 매입하기 위해 경쟁을 벌였다. 한 대형 증권사의 부동산금융 담당 임원은 "해외 오피스 빌딩 인수전은 중국 금융기관이 발을 빼면서 한국만 남았고, 한국마저 보수적으로 돌아서면서 일부 빌딩은 가격이 하락하는 등 부정적인 조짐이 보이고 있다"고 했다.

국내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메리츠종금증권은 지난 4일 300억원 규모의 부실여신이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서울에 있는 한 사업장의 시행사가 시행이익유동화 자산담보대출(ABL·Asset Backed Loan)을 받았는데 원리금을 3개월 넘게 연체했다. 이 대출은 개발사업 과정에서 사업비가 예산을 초과했을 때 시행사가 향후 발생할 시행이익을 담보로 받는 대출이다. 최근 사업장에 대한 정부 및 지자체의 관리감독이 강화되면서 사업비가 증가해 시행이익유동화 ABL을 받는 시행사가 늘어나는 추세인 것으로 알려졌다.

메리츠종금증권은 "신용등급 A+의 시공사가 보증을 서고 있어 2~3달 안에 원리금이 상환될 것"이라고 밝혔으나 서울권에서 부동산대출이 연체되는 일은 많지 않다 보니 업계 관계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서울은 그럭저럭 버티고 있지만 지방의 소규모 딜은 실제로도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기업평가

◇24조 우발채무 불안…자기자본보다 우발채무 큰 증권사도 있어

증권사 부동산금융 중 가장 우려되는 것은 우발채무다. 우발채무는 당장은 채무가 아니지만, 장래 우발사태가 발생할 경우 채무로 전환될 수 있다. 현재 부동산 관련 증권가의 우발채무는 24조원대로 추정된다. 전체 우발채무는 작년 말 기준 약 38조원이다. 일부 증권사는 우발채무 규모가 자기자본을 훌쩍 뛰어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 3월 보고서에서 "2018~2019년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우발채무를 보면, 좋은 입지의 아파트 및 공기업 보증 사업장 등 양질의 자산 비중이 감소했다"면서 "매각에 실패한 자산, 준공 후 매각예정 자산, 대규모 약정, 분리매각이 어려운 자산 비중이 커 우발채무의 시장위험은 과거 대비 크게 상승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다만 아직 우발채무가 현실적으로 위험이 될 가능성은 작다는 낙관론도 있다. 교보증권은 2016년 기준 채무보증 규모가 큰 9개 사업장을 분석한 결과 담보대출비율(LTV)이 50% 이하인 채무보증이 63%(금액 기준)였다고 밝혔다.

김지영 교보증권 애널리스트는 "과거 저축은행이 문제가 됐던 대출이 착공 및 인허가 전 토지매입자금을 빌려주는 브릿지론이었다면, 증권사 대출은 실제 착공 이후 사업 자금을 빌려주는 형태라 안정성이 높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