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찬 특파원

"퇴직 후 신선이 되세요. 런디산에서요!"

중국 남단 하이난(海南)성 우즈산(五指山)시에 있는 '런디산(仁帝山) 요양기지'라는 리조트가 홈페이지에 내건 광고 문구다. 퇴직한 노인 여행객이 주 고객이기 때문이다. 이 리조트는 18홀 골프장 4개 넓이의 부지에 호텔, 온천, 야외 수영장, 50석 규모의 영화관을 갖추고 있다. 40개 병상을 갖춘 병원도 있다. 투숙객에게는 매일 영양식을 제공한다.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월요일 점심 메뉴는 모과를 넣은 갈비찜, 도미찜, 찐 호박, 목이버섯 무침, 쌀밥 등이다. '우울증과 뇌졸중을 예방하고 위를 보호한다'는 설명도 덧붙여놨다. 2010년 설립된 이 리조트의 운영사는 홈페이지에 "700개 방을 운영 중이고 총 4000개까지 늘릴 예정"이라고 했다.

1000조원대 中 은발(銀髮) 경제

중국에서 실버산업을 뜻하는 '은발 경제'가 매년 급성장하고 있다. 중국 경제가 6%대 중속(中速) 성장하는 가운데서도 노인을 위한 상품·서비스 시장만큼은 고속 성장 중이다. 중국노령공작위원회 판공실에 따르면 60세 이상 중국인이 여행에 쓴 돈은 올해 처음으로 5000억위안(약 84조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2016년 이후에만 연평균 28% 증가하고 있다.

중국의 은발 경제 전체 규모는 이미 1000조원을 돌파했다. 중국 컨설팅 회사인 아이메이(艾媒)컨설팅은 2019년 중국의 양로(養老) 산업 시장 규모를 6조8900억위안(약 1158조원)으로 추정했다. 2022년에는 10조위안(약 168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첸잔(前瞻)산업연구원은 노인 전문 서비스, 노인 상품 등의 시장 규모가 2024년까지 연평균 13%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츠푸린(遲福林) 중국개혁발전연구원장은 중국 경제일보 기고에서 "보수적으로 잡아도 중국 노인 관련 소비는 2030년까지 18조위안(약 3024조원)에 이를 것"이라며 "수요에 비해 양로 제품과 서비스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했다.

홍콩의 한 애플스토어 앞에서 노인들이 애플의 ‘아이패드(iPad)’를 사용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는 실버산업을 뜻하는 ‘은발 경제’가 매년 급성장하며 노인을 위한 상품과 서비스가 쏟아지고 있다. 현재 중국에서는 60대 이상 6명 중 1명이 스마트폰을 쓰고 있고, 7명 중 1명은 앱을 이용해 스마트폰으로 결제해 본 경험이 있다.

중국에서 '고령 산업'이라는 표현이 등장한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다. 중국노령공작위원회가 노령 산업 5개년 계획(2001~2005년)을 발표한 데 이어 2006년 국무원이 '중국노령산업발전백서'를 통해 노인을 위한 양로 서비스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당시 중국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막 1억명이 됐을 때였다. 2018년 중국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1억660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1.9%다. 10년 사이 한국 전체 인구보다 많은 5293만명이 증가했다. 60세 이상으로 확대하면 2억5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17.9%를 차지한다.

하지만 은발 산업이 주목받는 것은 단순히 노인 인구가 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돈 있고 스마트폰으로 쇼핑하는 이른바 '액티브(active) 노인'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에서는 60대 이상 6명 중 1명이 스마트폰을 쓰고 있다. 알리페이·웨이신 등 앱을 이용해 스마트폰으로 결제해 본 60대 이상이 7명 중 1명꼴이라는 조사도 있다. 이 비율은 앞으로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현재 중국의 60대는 문화대혁명 당시 중단됐다가 1977년 부활한 대입 입시(高考·가오카오)를 통해 본격적으로 대학 교육을 받았고, 중국의 고속 성장을 주도하며 부(富)를 키운 세대들이다.

경제지인 북경상보는 지난 7월 '노인 소비, 가장 저평가된 경제지대'라는 제목의 기획 기사에서 "광장무(廣場舞·중국 노인들이 운동 삼아 도심 광장에서 함께 추는 춤)를 추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며칠 만에 새 유니폼을 사 갈아입듯 요즘 노인들은 돈과 여유가 있고, 젊은 층 못지않게 트렌드와 가격에 민감하다"며 "중국 내 저축 연령이 중·장년층에게 집중돼 있어 앞으로 노령 산업이 중국의 신(新)경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의료부터 지팡이까지 치열한 경쟁

은발 산업은 크게 상품, 서비스, 부동산, 금융으로 나뉜다. '은발 상품'은 전동 휠체어처럼 노인이 일상적으로 쓰는 의료 기기·의약품·건강식품·일용품이다. 혼자 사는 노인 등을 위한 양로·의료·간호, 관광 등은 '은발 서비스'로 분류된다. 은퇴 후 퇴직자를 위한 실버타운 등 '은발 부동산', 노인을 위한 각종 보험 등 '은발 금융'도 있다.

중국 은발 경제에서 기회를 잡으려는 기업들의 경쟁도 치열하다. IT(정보기술)와 결합한 기업들도 많다. 2014년 설립된 항저우 아이쉰(愛迅)과학기술회사는 혼자 사는 노인을 위한 종합 서비스를 제공한다. 병원, 가사 도우미 센터 등과 협업 체계를 구축, 서비스에 가입한 노인에게는 가사 관리부터 의료 등 필요한 서비스를 알선한다. 양로원 같은 전문 서비스를 제공하되 노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담장 없는 양로원'을 지향한다. 선양(瀋陽)에 본사를 둔 중루이푸닝(中瑞福寧) 로봇, 선양신쑹(新松) 로봇 등의 로봇 기업들은 노인이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 환자를 위한 로봇을 개발·생산하고 있다.

노인용품 시장도 커지면서 경쟁이 치열하다. 2000년대 초반 중국 기업들이 주도하던 노인용 지팡이 시장은 2000년대 후반부터 일본 기업들이 진출하며 가격, 품질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구매력이 높아진 중국 노인들이 품질을 따지기 시작하며 나타난 변화다. 노인 전동 휠체어, 보청기, 요양용 침대 등 다른 노인용품도 사정은 비슷하다.

액티브 노인들이 주도하며 가장 빨리 성장하는 은발 산업은 여행업이다. 노인 절반가량이 매년 2~3회 여행을 떠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여행과 건강 검사 등을 결합한 15일짜리 '양생(養生) 여행 프로그램'은 1인당 3480~4280위안(약 58만~72만원)에 팔린다. 아이메이 컨설팅은 2016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은발 소비 성장을 전망하며 "여행 등 사회 교류·오락 분야 지출이 연평균 22% 증가하고, 건강식품 등 보양·건강 관련 지출이 19%, 간호·의료 서비스가 16%씩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한국 기업은 어떻게 해야 할까? 코트라(KOTRA)는 최근 펴낸 '중국 시니어 비즈니스 진출방안' 보고서를 통해 "중국의 전통 관념상 노인의 90% 이상이 재택 양로를 택한다"며 "재택 양로를 겨냥한 IT 기반 제품·서비스에 주력해야 한다"고 밝혔다.